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이 더욱 단단해질 기회라고들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자주 마주한다.
젊은 시절에는 대의를 외치고 정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며 조용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신념을 뒤집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세상을 알게 된 결과”라며 이해를 구하기도 하고, “인생의 복잡함을 겪은 지혜”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지혜일까? 아니면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비겁한 선택일까?
나이가 들며 추해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신념을 과거의 ‘실수’로 치부하며, 책임을 부정하는 태도는 세월을 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잃은 것이다.
시절에 따라 변하는 신념은 신념이 아니다
신념이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나침반과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그 나침반을 스스로 내려놓는다.
젊은 시절에 정의를 외치던 목소리는 점차 사라지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만 남는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이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며, 세상을 이해한 척한다. 그러나 이 ‘이해’란 사실 편리한 선택일 뿐이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책임질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의 타협이다.
비겁함을 지혜로 포장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변절을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과거의 신념을 지키는 이들을 순진하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삶의 복잡함이 곧 타협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변절의 본질은 비겁함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념의 수정이 아니라, 신념의 상실이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며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김지하의 사례는 변절의 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지하 시인은 젊은 시절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맞섰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의 시와 행동은 억압된 시대에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의 목소리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를 비판하며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고, 젊은 날의 신념을 스스로 부정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고, 어떤 이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김지하의 변화를 두고 “삶의 복잡함을 이해한 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과거를 깎아내리고, 동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이런 선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념을 지키는 일의 무의미함을 전달하고, 사회적 갈등 속에서 목소리를 잃게 만든다.
늙음은 신념의 강화가 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며 신념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삶의 책임이 늘어나며, 젊은 시절의 열정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념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경험과 함께 신념이 더 깊어져야 한다. 그것이 세월을 더하는 삶의 방식이다.
현실에 타협하며 신념을 잃는 것은 삶의 복잡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배신하는 선택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그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나이 들수록 추해지지 않는 길이다.
변절은 삶을 파괴한다.
변절은 단순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부끄러워하고, 그 시절의 자신을 부정하며 사는 것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무의미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신념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것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삶도 무너진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나이 들어도 중심을 지키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념을 버리고, 자신의 중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후퇴다.
변절은 지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더욱 단단히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 속에서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그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온재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