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푸켓 피피섬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저씨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이 바오인 아저씨는 피피섬에서 방갈로와 레스토랑을 운영합니다.

나는 돈을 많이 내는 관광객은 아니지만 바오 아저씨는 나와 친구이기 때문에 늘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합니다. 방값을 계산하기도 전에 짐을 방 안으로 옮겨 놓습니다.

나는 20대 초반에 아저씨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저씨와 아저씨처럼 친절한 직원들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의 방갈로와 레스토랑에는 지친 내 몸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지금, 최고의 요리사인 아저씨에게 배운 요리를 한국에서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에도 치유하는 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저씨는 처음에 일당 20바트(당시 환율로 오백원 정도)를 받고 막노동을 했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함께 막노동 하는 친구들은 다 쓸데없는 짓이라 했지만 아저씨는 주경야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막노동 생활에서 벗어나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아저씨를 눈여겨본 호텔 주인은 아저씨가 방갈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방갈로는 잘 되었고 아저씨는 레스토랑까지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방갈로에서 묵고 있는 나에게 아저씨가 영어로 적힌 메일을 보여주며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메일에는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슬람교인인 관광객이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이곳 피피섬에 와서 마을사람들을 위해 이슬람사원을 지어주었습니다. 모두 고마워했습니다.

그 관광객이 피피섬에 다시 왔습니다. 현지의 가게 모두 숙박비와 음식값을 받았는데 아저씨만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관광객이 왜 돈을 받지 않느냐고 묻자 아저씨는 친구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원을 지어준 사람은 자기가 베푼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아 아저씨가 힘들 때 자신이 도와주겠다 하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바오 아저씨는 남몰래 도와주던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아원에 가보니 화장실이 엉망이었습니다. 깨진 변기와 부서진 문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가게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관광객에게 메일을 보냈던 것입니다.

베푸는 사람은 많지만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오 아저씨의 꿈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이든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 햇빛, 바람, 구름, 그리고 사람들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을 배우고, 하늘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욕심을 내려놓고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스승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척박한 환경과 가난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파키스탄에 알렉스초등학교를 지었다. 

65명의 학생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자선모임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현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서울에서 ‘알렉스 타이하우스’라는 태국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봉사단을 조직해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고산지역 오지마을로 식량, 의약품, 학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 오지에 두 번째 알렉스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머물며 김만덕기념관이 추진 중인, 지역 어르신 1,000명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어르신 장수효도사진 나눔사업’에 재능기부 포토그래퍼로 활약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비전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