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지만, 공학은 나의 적성에도 잘 맞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쪽에 재능과 취미가 있음을 아버지께서 간파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몰두해 파고들던 나였다.

기섭이 형이 갑작스레 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 형님을 따라 동경제대 공학부에 진학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귀국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동경제대 공대를 눈앞에서 포기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원하는 공학을 공부할 만한 곳이 당시 조선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막막했다. 바로 그때 큰형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기동아, 우리 경성제대에 이공학부가 생긴다는구나. 마치 네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야.”

정말 그랬다. 당시 조선에는 대학이라고 할 만한 학교도 거의 없었지만, 최고 대학인 경성제대조차 공학부가 없었다. 그런데 나의 귀국에 딱 맞추어 경성제대에 이공학부가 신설되면서 기회가 온 것이다.

경성제대는 이공학부 신설을 앞두고 한 해 전에 예과에서 40명의 신입생을 모집해 가르쳤다. 그중 35명이 예과를 수료해 7개 학과에 지원하도록 했다. 한 과에 5명 안팎밖에 안 되어 고등학교와 전문학교 졸업자들에게 편입의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편입시험을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경성제대 이공학부 감사패, 1979

일본 6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동경제대 공학부 합격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공부하지 않고도 편입시험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당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예과를 수료한 인원과 나처럼 편입한 인원을 합해 총 54명이었는데, 일본학생이 40명이고 조선학생은 14명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지원한 응용화학과는 예과에서 올라온 5명 중 조선인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일본학생이었는데, 내가 편입하면서 두 명이 되었다. 그 조선인 학생이 바로 최한석이라는 친구인데, 훗날 나와 공직생활을 같이 하다가 공직에서 나온 이후에는 계속 공부해 고려대 교수가 되었다. 나의 절친 중 절친이었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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