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오스트리아 Rogner Bad Blumau 리조트. 획일적인 건물의 창문을 배제하고 나무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은 옥상에 다시 나무를 위한 공간을 배려했다.

[뉴스비전e] 어릴 적 읽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있다. 이 동화가 품고 있는 내용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생태학을 하는 나는 줄거리 중에 주인공이 임금님 귀 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대목에 주목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소통’을 강조한다. 독선과 아집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찍어 누르고 강요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일방적인 억압, 강요 등의 불평등 및 불균형의 문제가 만연해 있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상당 부분도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누군가 나서서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면 많은 것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실망과 좌절에 앞서 숲과 나무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말 못할 고민을 대나무에게 얘기하듯이 숲에 있는 나무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아 보라.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어 보자.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들도 모두 이름이 있는데 나의 고민을 들어줄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무엇이 대수랴. 나무는 늘 우리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 농무성(USDA)에는 ‘Working tre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무가 단순히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같이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하는 나무’는 야생동물 보호, 농업, 수질개선, 쓰레기처리, 수분매개체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지킴이로서 주어진 다양한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나무와 숲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는데 이를 파트너로 승격시킨 것이다. 우리에게는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목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화가 그리고 환경운동가인 훈 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나무를 인격체로서 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가 있던 자리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있는 나무와 더불어 살기 위해 나무와 자연에 미안한 마음으로 건물을 짓고 건물 위에 나무를 심어 공존을 실천해 왔다.

회색의 도시에서 그나마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는 곳이 정원이며 공원이다. 집 주변에 산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곳에서 우리가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가족과 소통하고, 이웃과 소통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이다. 혹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정원에 있는 풀 한포기, 공원에 있는 한그루 나무, 그리고 뒷산의 숲속 나무가 빈자리를 대신해 줄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면, 나무에게 말하라. 숲에게 말하라.
 

 

◆ 최송현 교수는...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서울시립대에서 조경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학과에서 응용생태연구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 조경식물학’, ‘환경생태학’, ‘지리정보체계(GIS)’ 등을 가르치고 있다. 산림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산야에서 숲과 나무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학에 스며 있는 ‘평등’과 ‘공생’의 깊은 의미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류의 마지막 보고라 할 수 있는 국립공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같은 보호지역의 자원, 이용, 관리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환경생태학회의 ‘국립공원 및 보호지역 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보호지역과 관련된 활동은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자연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함이다. 《최신조경 식물학》(공저, 2018), 《공원에서 정원을 보다》(공저, 2014), 《한국의 전통사찰》(공저, 2012)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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