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If one is master of one thing and understands one thing well, one has, at the same time, 

insight into and understanding of many things.” _VINCENT VAN GOGH

캐나다의 교육학자 키렌 이건(Kieran Egan)과 그의 동료들은 상상력교육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위와 같은 의미심장한 문장을 걸어두었다.(http://ierg.ca/LID/) 흡사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우리 속담이 떠오른다.

너도 나도 남보다 많이 배우지 못해 안달하는 시대에 하나라도 제대로 알면 충분하다는 메시지는 큰 울림을 준다. 한국의 교육은 많은 지식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기로 세계적인 정평이 나 있으면서도, 동시에 배움을 두려워하고 그로부터 도주하는 학생들을 계속 양산하고 있다.

이 시대는 우리교육 전체를 관통하는 ‘빠르게’, ‘많이’, ‘ 효율적으로’ 가르치려는 욕망을 근본적으로 성찰할 전환점이다. 이건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현대 교육이 지식의 폭을 넓히는 데만 열중해 배움의 진정한 깊이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안으로 배움의 모든 과정에서 ‘상상력’을 자극할 것을 주장한다.

근대 교육은 오랫동안 지식을 합리적이고 계열적인 것으로 파악했고, 우연적이고 비약적인 속성을 지닌 상상력은 교육 담론의 저변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의 고정불변성이 깨어지면서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역량인 상상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상상력(imagination)은 어떠한 심상(image)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힘이다. 이미지는 명약관화한 지식과는 달리 논리적 구조를 필연적으로 담보하지도 않고, 때에 따라 생략과 과장이 일어나기도하며, 주관적인 인상이나 감정을 강렬하게 포함하기도 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대중적으로 상상력은 일상적이지 않은 환상이나 공상과 동일시되곤 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에 따르면 공상적인 활동은 광범위한 상상 기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상상은 직접 경험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기억작용에서부터 경험을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고등적인 창조력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인지능력의 기반이 된다. 지식의 역사에서 상상력이 번번이 고차적 사고의 걸림돌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달리 비고츠키는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의 종합적인 지적활동에서 핵심을 차지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즉, 상상력은 일부 천재에게 부여된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활용하는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정신능력이다. 상상력은 번뜩이는 천재성이 아니라 꾸준히 축적된 경험을 질료로 삼아 발휘되며, 따라서 특별한 교육활동을 통해 단독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풍부한 경험의 더미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상상력에 기반을 둔 깊은 학습’은 이론적으로 교육 내부의 오랜 대립점인 진보주의 아동중심주의와 전통주의 교과중심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 교육관에서는 교과지식을 강조하고 진보적 입장에서는 아동의 자유와 창조적 역량을 중시한다. 두 입장은 오랫동안 상호배타적인 관계로 인식되어 갈등을 거듭해왔다. 이건은 전통주의의 경직성과 진보주의의 모호함 모두를 비판하며, 두 입장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데서 현대 교육의 문제점이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지식과 자율성 모두가 배움의 핵심적인 요소인데도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호기심이나 재미는 포기해야 하고, 반대로 흥미로운 상상을 하면 학교공부는 멀어진다는 식이다. 그러나 상상력의 관점에서 교과지식과 학습자의 자율성은 모순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은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 축적되고 확장된다. 이건은 상상력을 통해 학습자의 개성과 창조성을 중심에 두면서도 깊이있는 지식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방법을 제안한다.
 

 

◆ 김회용 교수는...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 피츠버그대(Univ. of Pittsburgh)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경상대 교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린이 철학’, ‘사고력 교육’, ‘상상력교육’ 등 아동의 철학적 사유 능력 증진에 관심을 두고, 철학 이론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상력을 활용하는 학습이론인 ‘깊은 학습(Learnin in Depth)’ 프로그램을 초등학교에 적용해 교육학계와 학교 현장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저서로 《교육과 교육학》(공저, 2015), 《다문화 교육의 현황과 과제》(공저, 2008), 《교육철학 및 교육사》(공저, 2014), 《교육학개론》(공저, 2014), 《좋은 교육》(공저, 2007), 《질적 연구: 우리나라의 걸작선》(공저, 2008)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상상력교육,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공역, 2014), 《깊은 학습, 지식의 바다로 빠지다》(공역, 2014), 《교육연구의 철학》(공역, 2015), 《교육과 지식의 본질》(공역, 2013), 《머리 속의 수레바퀴》 (공역, 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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