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신경정신과학을 전공한 죄(?)로 나는 간혹 학생들로부터 아니면 지인들로부터 상담을 요청(?)받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제게 찾아와 의논을 하더군요. 평소 잘 아는 친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 그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살고 있었고, 너무 실의에 빠져서 혼자 공간에 머물면서 부모님과도 대화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친구에게 무엇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습니다. 나는 일단 그 학생의 마음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친구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위험증상에 대해 알려주고 그 친구의 부모님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것을 당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그걸로는 부족했나 봅니다. 뭔가 자신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학생에게 가끔 전화해 안부를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학생이 기대한 것은 지금 당장 그 친구를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금방 어마어마한 좌절을 겪은 사람은 당연히 무너지고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도움조차 귀찮아 질 때가 있죠.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급성기 환자를 치료할 때, 그 환자가 경험하는 재경험(트라우마 사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 꿈에서 재현되기도 함, 과각성작)은 자극에 예민해지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임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생의 친구가 보이는 증상은 그가 겪은 절망을 소화해 나가는 하나의 정상적인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이야기할 것을 강요하거나 ‘극복할 수 있어!’, ‘이 일을 계기로 더 강해질 거야.’ 등의 조언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조언만큼 잔인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저 안전한 공간에서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함께 견디고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서로 감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 힘들어 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덩달아 그 감정에 동요됩니다. 또 상대가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빨리 그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조바심을 냅니다. 그러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심리적 과정을 존중하지 않는 충고, 조언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 임정화 교수는...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신경정신과 부교수. 대전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병원 한방신경정신과에서 전문의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교육이사를 맡고 있다. 환자의 치유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명상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한국명상학회 명상지도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고, 마음의 변화 상태를 눈으로 관찰하고자 뉴로피드백과 정량화뇌가검사(QEEG)를 공부 중이며 뉴로피드백과 QEEG의 Technologist certification board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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