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언어로 표현된 모든 개념에는 역사와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인성이란 말도 예외는 아니다.

이 글은 인성 개념의 기원과 역사를 추적하고 그 맥락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인성교육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출발해 보자.

2018년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인성은 ‘사람의 품성’ 또는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 특성과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개별적 성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 그러한 사람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에 교육이란 말이 덧붙여지면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진다. ‘인성 교육’이라는 말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의된 인성을 인위적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 정의한다. ‘가꾸고 기른다’로 부드럽게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법에는 사람의 품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법의 목적을 담은 제1조는 인성에 대한 이러한 조작적 정의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인성은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할 ‘국민’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여기서 인성은 행복을 추구하는 스스로 그러한自然 ‘누구’가 아니라 국민으로 키워지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무엇’이다.

인성character은 사람 사이人間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개별 적 존재인 사람人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시민성 citizenship은 사회적 동물 또는 ‘사이’의 존재인 인간에 초점을 맞춘 품성이다. 크게 보면 인성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것이다.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의 초점이 개별적 존재인 사람에 맞춰지느냐 사회와 관계의 존재인 시민에 맞춰지느냐는 단순한 선호의 문제일 수 있다. 인성과 시민성을 상호 대립이 아닌 보완적 관계로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정책의 방점이 어느 쪽에 찍히는지에 따라 그 과정과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인성교육에는 그것에 관한 법을 가지고 있을 만큼 익숙하지만 시민성citizenship이나 시민교육citizenship education이라는 말 자체가 무척이나 어색한 우리는 사람의 ‘사이’보다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람을 더 중시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성이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반영한다면, 시민성 citizenship은 서양에서 군주와 봉건귀족을 대신해 주류가 된 상공업 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질서를 대변한다. 인성이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부과된 규범의 성격을 갖는다면 시민성은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강조한다.

인성이 주어진 질서를 지키는 데 기여한다면 시민성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데 유용하다. 인성은 보수를 시민성은 진보를 지향한다. 인성은 질서를 시민성은 다양성을 추구한다. 인성교육이 다 함께 지켜야 할 ‘무엇’을 가르친다면 시민교육citizenship education은 스스로 또는 함께 되어가는 ‘누구’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성교육에 관한 정책과 지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많지만 시민교육을 표방한 명시적 정책문서는 찾기 어렵다. 진보적 정부에서 마련된 시민교육 정책이 보수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유명무실해지기도 한다.

국부의 증가와 사회적 안정을 추구한 20세기 시장 자본주의 근대국가가 추구할 가치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협력적 공유사회를 향해가는 21세기 복지국가에서는 인성보다는 시민성이 주요 가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주요 상품의 생산비용이 '0'에 가까워지고 재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공유를 통해 그 가치를 나누는 경제가 실현된다면 화폐가 아닌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교환시스템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전에 정해진 권리와 의무보다는 의사 결정에의 참여가 관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21세기를 위한 시민교육을 ‘어린시절부터 명확한 생각으로 사회에 관한 결정에 참여하는 계몽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으로 정의한다.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인성교육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는 시민교육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강신익 교수는...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추상적 지식보다는 일상적 삶에 봉사하는 의학을 지향한다.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변해가는 삶의 터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5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마흔이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의학 관련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0년부터 일산백병원 치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의료인문학을 가르쳤고, 2004년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전임교수가 되었다. 2013년 가을부터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인문학적 의료’를 공부하고 가르친다. 특히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2007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으로 인문의학연구소를 개설해 <건강한 삶을 위한 인문학적 비전>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인문의학》 시리즈 3권을 펴냈다. 지은 책으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몸의 역사》, 《의학 오디세이》 (공저),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공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 저),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등이 있고 역서로는 《공해병과 인간생 태학》, 《사회와 치의학》,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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