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1962년 나는 정부와 성곡 김성곤 금성방직(쌍용그룹의 전신) 회장의 간청으로 시멘트공장을 신설하기 위해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성곡은 쌍용양회 설립을 구상하면서 나에게 “좋은 조건에 차관을 주고 그 돈으로 공장을 지어줄 외국회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쌍용으로 오기 전 한양공대에서 서독 훔볼트(Humbolt Co.)에서 개발한 신기술에 관한 논문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었다. ‘SP킬른(Kiln, 가마)’이라고 불리는 시멘트 소성방식이었다.

시멘트 원료를 가열할 때 4단계의 탑을 내려오면서 섭씨 1,350도까지 올라간 고온 폐가스를 다시 원료로 사용해 열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이었다.

기존의 거대한 로터리 킬른(Rotary Kiln, 원통형 회전가마)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운전하기도 쉬워졌다.

하지만 서독 외에 어떤 나라도 그 방식을 도입하고 있지 않아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었다. 신기술을 어느 정도까지 실현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한 후,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다.

혁신적인 기술로 가동되는 공장을 방문해 실사한 다음 훔볼트와 ‘차관 교섭과 기술제공 및 건설’에 합의하고 가계약을 체결했다. 협상에서 기지를 발휘해 70만 달러 정도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SP킬른 방식을 적용해 공장을 짓는 데 박차를 가했다. 1962년 5월 쌍용양회㈜를 설립하고, 1964년 4월 영월에 연산 40만 톤 규모의 공장을 준공했다. ‘쌍용’이라는 이름도 내가 지었다.

당시 일본도 도입을 망설이던 SP킬른 방식의 공장을 1년 8개월 만에 완공해 최단공사기간을 기록했다. 그 공로로 나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SP킬른은 다시 NSP킬른으로 개량되어 시멘트산업은 혁신을 거듭했다.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국내에서 신설되는 시멘트공장은 이 방식을 채택하고 기존 공장도 이 방식으로 개조해 시멘트산업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국내 시멘트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시멘트 품질 향상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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