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상공부에서 국책사업을 추진하느라 바쁜 중에도 나는 대학에 부지런히 출강했다.

한양대에 화공과가 창설되었을 때부터 ‘요업규산염’과 ‘연료’ 과목 등을 강의했다.

상공부에서 공업행정을 하면서 통감한 것이 기술인재의 부족이었다. 공장을 짓고 가동하려면 엔지니어들이 있어야 하는데 인재들이 없으니 선진국 엔지니어들을 ‘모셔 와야’ 했다.

특히 시멘트를 포함한 요업(세라믹) 분야에서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재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 명의 엔지니어라도 더 키우고 싶었다. 기술을 ‘주먹구구’로 익히거나 ‘어깨너머’로 터득하는 식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공업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탄탄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제대로 기술인재를 키워야 했다.

그 역할을 맡아줄 곳은 역시 대학밖에 없었다.

1960년 봄, 나는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중진 교수들을 영입했다. 전공과목 강의가 시작되자 세라믹스 탐구 열기는 고조되었다. 실험과 연구 시설도 보완되어 ‘세라믹 탐구의 산실’로 손색이 없을 만큼 국내에서 으뜸가는 연구시설로 자리잡았다.

요업은 물론 ‘세라믹’이란 단어도 낯선 시기였고 요업의 ‘요(窯)’자도 모르는 학생도 많았다. 우리 교수진은 요업의 세계와 전망을 가르치며 희망을 심어주었다. 학교버스를 타고 공장견학을 가서 학교에서 못한 현장교육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요업계는 한양대 요업공학과 졸업생들에 의해 가동되고 발전되었다.

졸업생들은 학계, 연구소, 기업에 고루 포진되어 교수, 책임자, 경영자로 크게 활약했다. 졸업생들은 오늘날 핵심소재 부품산업, 기능성 세라믹스, 구조재료 세라믹스 등 세라믹 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정보기술(IT), 환경기술(ET), 생명기술(BT) 등과 접목해 융합기술로 진출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학업에 정진해 여러 대학에 창설된 요업공학과, 세라믹공학과,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60년대 후반 고려대, 연세대, 인하대, 서울대(재료공학과로 창설, 후에 요업공학과로 변경)에, 그리고 지방에는 전남대, 부산대 등에 요업공학과가 설립되어 오늘날의 세라믹산업을 일으킨 인력을 공급했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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