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프랑스혁명으로 어수선하던 틈을 타 집권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탈리아에 있는 오스트리아군을 쳐부수기 위해 알프스산맥을 넘었다.

이때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알프스산맥의 작은 시골 마을 부르 생 피에르(Bourg-Saint-Pierre)를 지나가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머문 나폴레옹은 마을사람들에게서 80여 개의 구리솥과 2,087그루의 나무, 그리고 그것들을 운반할 장정들까지 징발했다. 마을을 떠나며 나폴레옹이 말했다.

“그대들의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 이것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반드시 할 것이다!”

말뿐이 아니었다. 병참장교의 사인이 들어간 어음까지 발행해 주었다. 나중에 가지고 오면 돈으로 바꿔준다고 약속했다.

당시 프랑스군은 현금 보유량이 부족해 그 많은 물자와 인건비를 당장 지불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이 어음이지 그것을 파리까지 가서 제출해야 했다. 19세기 유럽에서 알프스산맥 오지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몇 백 킬로미터가 넘는 파리까지 가서 어음을 돈으로 바꿔올 수 있었겠는가?

받으러 갔다 해도 문전박대 당할게 뻔했다.

받아낸다 해도 당시 나폴레옹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전쟁광’이어서 프랑스군 부역자로 찍혀 마을이 통째 처벌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르 생 피에르 마을 사람들은 끈기 있게 돈을 받아내려고 나폴레옹에게 편지를 썼다.

놀란 나폴레옹도 “나중에 지불하겠다”는 답장을 써 주긴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

“준다고 했지, 언제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폴레옹의 변명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돈을 받을 방법이 사라진 부르 생 피에르 마을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에게 받은 영수증을 버리지 않고 마을 기록보관소에 고이 모셔두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약속어음’ 이야기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던 1984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스위스를 친선 방문했을 때 부르 생 피에르 마을의 대표가 미테랑을 찾아왔다. 그리고 180년이 넘은 어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조상들한테서 징발해 간 물자와 조상들의 임금을 지불해 주시오!”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 정부가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계승하긴 했지만 국제법상 지급할 의무도 없다”고 보고했다.

미테랑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가?”

“원금은 4만5,000프랑이고 그동안 쌓인 이자까지 합하면 2,000만 스위스프랑(약 200억 원) 정도 됩니다.”

미테랑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약속은 약속이오. 이자까지 다 지급하시오.”

그렇게 해서 부르 생 피에르 마을 사람들은 조상들이 나폴레옹에게 받아야 했던 돈을 184년이 지난 후에야 받았다.

 

◆ 저자 김을호
독서활동가 (WWH131 키워드(패턴) 글쓰기 개발자)
_서평교육, 청소년・학부모・병영 독서코칭 전문가

독서에도 열정과 끈기,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독만권서, 행만리로, 교만인우(讀萬券書 行萬里路 交萬人友, 만 권의 책을 읽었으면 만 리를 다니며 만 명의 친구를 사귀어보라)’를 실천하는 독서활동가. 

대학원에서 학습코칭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했다. ‘책 읽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책 읽는 우수 가족 10만 세대 선정’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국민독서문화진흥회 회장으로 독서문화 진흥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제21회 독서문화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저서로 《필사로 새겨보는 독서의 힘》 《독공법》 《아빠행복수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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