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00년대 초, 독일에 취재를 갔었다. ‘명차의 나라’에서 BMW를 비롯한 자동차 메이커들의 ‘미래차’ 전략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이 임무였다.​

BMW 본사는 올림픽 개최도시로 잘 알려진 남부 뮌헨(Munich)에 있었다. BMW 본사와 공장 역시 올림픽공원 근처에 있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눈이 쌓인 스타디움과 BMW 앰블럼이 선명한 공장 전경이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BMW에 대한 호감과 그 본사를 처음 방문한다는 설렘만큼 철저한 예습을 했던 나와는 달리 당시 나의 취재에 응대한 독일인 담당자는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한국 기자는 처음 본다며 무척이나 신기해 했다. 취재를 하는 나보다 더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가 한국에 관해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정보 중 하나는 BMW 7시리즈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팔리는 나라라는 사실이었다. 7시리즈는 예나 지금이나 독일 본토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 ‘사치품’이란 점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먹고살 게 없어 광부와 간호사를 파독한 가난했던 나라, 불과 몇 해 전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에 그렇게 졸부가 많은가 하는 의구심을 그의 눈빛에서 엿본 것은 나의 지나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독일인 담당자는 내게 “한국이 교통사고율이 그렇게 높은 이유가 과속 때문이냐?”고도 물었다. 나는 전날 밤 뮌헨공항에서 눈 덮힌 도로를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던 택시기사를 떠올리며 “한국 드라이버들이 과속한다는 것은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나라에서 할 질문은 아닌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독일인 담당자는 그저 한국 기자를 처음 보았고 평소 한국에 대해 품고 있던 궁금증을 풀고 싶었을 뿐이었겠지만, 분수도 모르고 7시리즈를 타고 과속이나 일삼는 나라로 기억할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BMW 취재를 마치고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로 가는 고속철(ICE)에서 만난 독일 청년으로부터 “한국이 분단된 이유가 종교 때문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우리를 몰라서 그런 거지, 우습게 보는 건 아닐거야!’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귀국했던기억이 난다.​

BMW는 지금 한국에서 불타고 있다. 독일 본사에서는 이제 한국을 모를 수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또 그 특유의 궁금증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왜 유독 한국에서만 불이 나는 거야?’

달리는 차가 불타는 것을 높은 교통사고율 운운하며 ‘성미 급한’ 한국인의 과속 탓으로 돌릴 것인가.  BMW 본사는 한국에 대해 그만 궁금해하고 당장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명차의 자부심을 지키는 길이다.

당시 BMW 본사 담당자는 수소차를 비롯한 친환경 차량이 금방이라도 시판될 것처럼 흥분된 어조로 자랑했었다. 당시의 ‘미래차’가 지금 ‘현재차’로 실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당시의 현재차가 지금 대한민국의 도로 위에서 불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본사의 한국 기억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한국은 7시리즈라면 다른 나라에서보다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는 ‘호갱’들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열 받으면 대통령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고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BMW 본사가 한국에 대한 기억법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의 BMW 기억법이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기억법은 이것이다.

‘BMW= Burning Murder Weapon(불타는 살인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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