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은행, 엔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시범 프로젝트 착수
일본의 금융 대기업들이 디지털 결제 혁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11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쓰비시 UFJ 은행,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미즈호 은행 등 일본의 3대 은행이 7일부터 엔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시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는 일본 금융권이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현실 경제에 적용하는 첫 단계로 평가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각 은행이 통일된 기술 표준을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고,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이 수탁기관으로서 자금 관리와 신탁 운영을 맡는 구조다. 세 은행이 공동 투자한 핀테크 기업 프로그마트(Frogmatic)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미쓰비시 상사가 실제로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국내외 지점 간 국경 간 결제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240개 이상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미쓰비시 상사는 이번 실험을 통해 송금 비용과 업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핀테크 기업 JPYC는 이미 지난 10월부터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를 발행했으며, 7일 기준 약 1억3천만 엔(약 85만 달러) 규모의 코인이 결제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신용카드 결제에 JPYC를 사용할 수 있는 ‘넛지(Nudge)’ 등의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실생활 적용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범사업이 일본 금융시장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이쿄대 숙륜 준이치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상호 호환이 가능해 기존의 폐쇄적 전자화폐보다 사용성이 높다”며 “소비자와 기업이 폭넓게 활용하게 되면 자금 흐름과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본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미국과는 다른 현실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정책금리는 0.5%로, 4% 수준인 미국보다 현저히 낮아 자산 운용 수익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세 은행이 단독 발행이 아닌 ‘공동 발행’ 방식을 택한 것은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또한 결제 수수료 감소로 인해 은행의 기존 수익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협력은 일본 금융권이 오랜 기간 디지털 결제 분야에서 보인 경쟁 구도를 넘어, 인프라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미쓰비시 UFJ 은행은 이미 2017년에 블록체인 기반 ‘MUFG 코인’을 선보였고, 미즈호은행은 2019년 QR결제 서비스 ‘J-Coin Pay’를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플랫폼으로 인한 분절화가 서비스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한편, 2022년 설립된 소액 송금 서비스 기업 ‘Cotra’는 이들 3대 은행과 리소나·사이타마 리소나 은행 등이 공동 출자한 사례로, 스테이블코인 결제 확산의 선행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Cotra 이용자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요 은행 계좌 간에 최대 10만 엔까지 수수료 없이 송금할 수 있으며, 사용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일본 금융계는 이번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엔화 경제권’의 실현 가능성을 시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일본 금융산업 전반의 수익 구조와 결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도전으로 평가된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