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기업들 미국 투자 재조정 나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1월 5일 보도에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관세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계획을 재조정하고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추진한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가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초 재집권한 트럼프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무역 파트너국을 대상으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며, 동맹국을 포함한 각국과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 아드리안 그레이는 “우리는 지금 전 세계 무역 규칙의 근본적인 재편을 목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관세율 조정이 미국에 투자하거나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심각한 불확실성을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9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협정 파기와 정책 반전을 반복하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 계획을 어렵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2020년에 체결한 미·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두 나라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달에는 캐나다와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양국 관계에 혼선을 초래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레인시는 “트럼프의 협상 철회는 무역과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키웠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 행정권을 이용해 부과한 대다수 관세의 합법성 여부를 심리 중이다. 이 판결 결과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전략에 추가적인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자동차·의류 산업 등 주요 제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포드, 스텔란티스, 제너럴 모터스 등 북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완성차 업체들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으며, 나이키는 관세 부담으로 2025년까지 약 15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나이키의 절반 이상의 신발 제품은 베트남에서 생산되는데, 미국은 해당 국가산 수입품에 대해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할 경우 관세 면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조건부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은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주요 다국적 기업들과 개별 협상을 진행 중이다.
8월에는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애플 등 기술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면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을 만나 관세 면제 합의를 논의했으며, 애플은 향후 미국 내 투자 규모를 1,000억 달러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약품 분야에서도 트럼프는 미국 내 제조 기반 확충을 요구하며 압박을 강화했다. 그는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지 않은 제약회사의 특허 의약품에는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화이자는 제품 가격 인하와 함께 향후 3년간 관세 면제 연장을 받는 대신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유사한 합의를 체결하며, 2030년까지 미국 제조 부문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FT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공급망의 대대적인 재편을 촉발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통해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단기적으로 미국 내 투자를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무역의 불안정성과 비용 상승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