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 2029년 ‘디지털 유로’ 발행 추진…유럽 통화 주권 지키기 나서

2025-11-08     최규현 기자
사진=뉴시스 제공.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르면 2029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유로(Digital Euro)’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1월 6일 보도했다.

발행이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이는 일본·미국·유럽 주요 경제권 가운데 처음으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된다. ECB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통해 무현금 거래를 확산시키고, 동시에 유로존의 통화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10월 30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디지털 유로 발행은 유럽의 디지털 주권을 강화할 것”이라며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발행은 EU 차원의 입법 절차 완료가 전제 조건이며, 회원국과 유럽의회 일부 의원들의 개인정보 보호 및 금융산업 영향에 대한 우려로 험로가 예상된다.

ECB 자료에 따르면, 유로존의 오프라인 매장 결제에서 현금 사용 비중은 2016년 54%에서 2024년 39%로 하락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주권’을 언급한 이유는, 무현금 결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유럽이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재 주요 결제 서비스 기업인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 애플페이, 구글페이 등은 대부분 미국 기업으로, 수수료뿐 아니라 소비자 결제 데이터가 미국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기반 민간 스테이블 코인’을 지지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점도 유럽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대다수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화에 연동되어 있어, 유럽 내에서 이들이 확산될 경우 유로화의 영향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CB는 디지털 유로 사용을 위한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개발 중이다. 개인이 간편하게 송금·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하되, 은행의 예금 유출과 대출 축소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 보유 한도를 3,000~4,000유로로 제한하고, 이자 발생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 한도는 영국이 논의 중인 ‘디지털 파운드’(1만~2만 파운드)에 비해 낮아 실효성 논란이 있다.

또한 유럽 시민들은 ‘디지털 화폐가 모든 거래를 추적 가능하게 만들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오프라인에서도 익명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유럽의회 내에서도 우익 세력뿐 아니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이 속한 여당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유로는 이르면 2027년 시범 운영이 가능하지만, 실제 발행 여부는 2026년까지 유럽의회와 회원국이 관련 입법에 합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유로가 유럽 금융의 혁신을 이끌 상징이 될지, 아니면 규제와 반발 속에 지연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