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주의의 무대가 무너질 때 -국회의 국정감사 난맥상에 부쳐
자유론의 저자 존스튜어트 밀은 “ 의회는 토론을 통해 진리를 밝히는 곳이다”라고 했다.이는 의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토론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진실이 드러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표현한 명언이다.
2025년 대한민국 국정감사장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로지 권력의 과시와 정치적 복수의 무대가 되었고,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본래의 기능은 퇴색했다. 다른 표현으로 지금 국회는 권력의 막장극이 펼쳐지는 무대, 국민은 관객이 아니라 조롱당하는 배경 소품이다.
국감장의 조희대 대법원장은 증인석에 앉혀진 것이 아니라, 마치 정치적 인형극의 조연으로 끌려나온 듯했다. 사법부의 수장이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해명을 요구받는 장면은,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류극의 실감나는 하이라이트였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며,장기 집권을 위한 입법 시도를 ‘국민 뜻’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밀어붙인다. 게다가 국회 상임위원장이라는 완장을 찬 자들은 유치한 어린이 병정놀이 하듯 전횡을 일삼아 국감장을 파행으로 몰아넣기 일쑤다. 이뿐인가 의원들의 천박한 언행, 대법원장을 친일파로 내모는 가공할 음모 등은 가히 3류정치의 전범(典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국감장의 증인으로 나온 어느 국무위원은 자신이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고위 공무원 신분임을 망각하고, 과거 권력있던 피의자의 변호인처럼 백주에 망언을 내뱉아 국민을 아연실색 시킨다 .국회는 이제 정책이 아니라 정쟁을 생산하고, 대안이 아니라 대립만을 유통하는 삼류 정치거래시장으로 전략했다. 아니 복수혈전의 살벌한 전장터일 뿐이다. 국민은 이 모든 광경을 보며 묻는다. “이게 국회인가, 국극(國劇)인가?”
야당 또한 이런 파행적 반헌법적 작태에 대해 파괴력 있고 논리적인 비판은커녕, 말싸움과 감정 섞인 고성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려 한다. 국민의힘도 더 이상 보수가치를 지향하는 품격있는 정당이 아니다. 오르지 사리사욕과 명철보신(明哲保身)에 눈이 어두운 무능한 정치집단일 뿐이다.
국힘이 오늘날 이렇게 몰락한 원인를 짚어보자. 우선 정치문외한으로서 의회를 경시하고, 망국적 게엄을 선포하는 자, 배신의 깃발을 앞세워 대권의 망상을 꿈꾸는 철없는 패륜아, 당 대표까지 하고서도 대선후보 안 뽑아준다고 튀쳐나가 당에 침뱉는 파렴치한, 원조 배신자로서 당이 몰락한 상황하에 전략과 해당행위를 구분 못하고 내부총질하는 정치 유랑자, 당 대표하겠다고 자기당을 내란정당으로 좌표찍는 이적의 트로이 목마,자기당을 와해시키려는 상대당의 책략인지도 모르고 각종 특검에 찬성표를 던지고 의연히 앉아있는 한심한 독불장군. 이러한 자들이 국힘의 주요 리더층을 형성해 왔으니, 국힘의 이런 지리멸렬상은 정치생리적 필연이다. 과연 이 당의 항로는 어데로 갈지 불문가지다. 이대로는 수권의 꿈은 아예 버리는게 순리일 것이다.
한편, 영국 하원에서는 총리에게 예리한 질문의 포화를 퍼붓지만,그것은 절차와 품격을 유지하며 이루어진다. 미국 의회는 대통령의 사법적 개입을 막기 위해 청문회와 특별검사 제도를 활용하지만, 사법부의 독립은 철저히 존중된다. 반면, 한국 국회는 대법원장을 불러다 앉히고,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며, 사법부를 정치의 무대장치로 전락시킨다. 이는 대사법부 견제가 아니라 정치적 린치쇼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무질서와 방종으로 흐를 때, 결국 독재로 귀결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유가 지나치면 노예가 된다”고 말하며, 무분별한 다수의 지배가 어떻게 철인의 통치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 국회는 그 예언을 충실히 재현 중이다. 현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는 탱크가 아니라 법률과 제도의 내부에서 무너진다”고 말한다. 그는 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요소로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와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을 강조한다. 이는 민주당이 명심하여 입법권력행사의 자제력을 보여야 한다는 교훈적 대목이다. 지금 국회는 그 ‘내부 붕괴’의 교과서적 사례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자제, 시민의 감시, 언론의 독립, 그리고 무엇보다 ‘공화적 덕성’에 의해 지탱된다. 국회는 다시 국민의 눈을 겸허히 바라봐야 한다. 여당은 권력의 유혹을 경계하고, 야당은 대안의 정치로 복귀해야 한다. 사법부는 정치의 무대에서 벗어나 헌법의 수호자로 남아야 한다.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지금, 그 책임은 무대 위 배우가 아니라 무대 밖 관객에게 돌아오고 있다.
사기(史記)에 “오얏꽃과 복사꽃은 말이 없어도 그 아름다움에 사람이 모여 길이 생긴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는 말이 있다. 이는 덕이 있는 정치지도자는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따른다는 의미다. 우리 의회와 정치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자화자찬하며 설득하지 않아도 국민이 존경하고 따르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 본다.끝
한형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