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한글학교, 민족 교육에서 국가 전략으로
재외 한국학교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약 2천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해외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한국 문화의 저변을 확산시키는 핵심 기반이다. 현지 사회에서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며, 향후 한국어가 국제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한글학교의 운영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재정, 교사, 교재, 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구조적 제약이 누적되어 있어 장기적인 발전을 어렵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 한계이다. 대부분의 한글학교는 학부모 등록금과 소규모 후원에 의존하고 있어 교재 구입, 시설 확보, 교사 인건비 지급 등 기본적인 운영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정부와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은 일부에 국한되며 지역 간 불균형이 커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어렵다.
교사 전문성 부족도 심각한 과제로 지적된다. 많은 교사가 자원봉사자나 비전공자 출신으로, 한국어 교육학적 기반이 부족하다. 정기적인 연수와 양성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수업의 질적 편차가 크고, 장기적인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교재와 교육과정의 비표준화 역시 문제다. 학교마다 사용하는 교재가 상이하거나 현지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마련되지 않아 학습자의 수준별 연계가 원활하지 않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등 공인 평가와의 연결성도 부족하다.
제도적 기반도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다. 현지 교육 당국의 인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정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로 인해 학교 운영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학부모와 학생들의 참여 동기도 약화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정부는 한글학교를 단순한 한인 자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안정적 재정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교사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연수와 자격 제도를 제도화해야 한다. 국립국어원과 세종학당재단 등 관련 기관은 협력하여 표준화된 교재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한국어급수시험(TOPIK)과 연계된 단계별 학습·평가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또한 현지 교육 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어 과목이 정규 교과에 포함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온라인 학습 플랫폼과 AI 기반 학습 시스템, 메타버스 교실 등 디지털 교육 인프라를 확대하여 물리적·지리적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력이다. 한인 사회와 한글학교 운영 단체는 현장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는 제도적·재정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양자가 협력할 때 교사 연수, 교재 개발, 장학 사업, 온라인 플랫폼 구축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정책이 현장의 수요에 부합하도록 조정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외 한글학교는 해외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한글 세계화를 이끄는 전략적 거점이다. 이제는 자발적 헌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체계적 지원을 강화할 때, 한국어는 세계 속에서 경쟁력 있는 국제어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