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간의 존재와 의미
“잘”이라는 말 속에 담긴 무한한 가치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이때 ‘잘’이라는 말은 과연 어느 정도의 칭찬일까? 숫자로 표현한다면 몇 개의 ‘0’을 붙일 수 있을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감정이다. 그러나 사실 세월이 빠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1년 365일, 12개월, 하루 24시간이 그만큼 짧고 유한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한의 세계와 ‘잘’의 크기
우리는 큰 수를 말할 때 흔히 ‘억(億)’을 쓴다. 하지만 억보다 훨씬 큰 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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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의 만 배는 조(兆), 조의 만 배는 경(京), 경의 만 배는 해(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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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자(秭), 양(壤),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까지 이어진다.
불가에서는 ‘극’의 억 배가 되는 수를 항하사(恒河沙)라 하며, 이는 갠지스 강 모래알처럼 많다는 뜻이다. 그 위로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수(無量數)까지 헤아릴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이렇게 보면, 선생님께서 “참 잘했어요”라고 하실 때의 ‘잘’은 천문학적인 수치, 정(正)에 해당하는 찬사일 수 있다. 소름 끼칠 정도의 크기다.
찰나의 인생과 만남의 인연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은 백마가 문틈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와도 같다. 그러나 바로 이 짧음이 인생의 가치를 규정한다. 우리 삶의 소중함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성 속에서 빛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수많은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서 만난다는 것은,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다. 생즉거래(生則去來), 만남과 헤어짐은 오고 가는 흐름 속에 있다.
시간의 철학
힌두교에서는 1겁(劫)을 43억 2천만 년이라 말한다. 15km 크기의 거대한 화강암 반석을 100년에 한 번 흰 천으로 닦아 그 돌이 다 닳아 없어질 만큼 긴 시간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생은 그에 비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불과하다.
시간을 표현하는 말들도 있다. 촌각(1분 30초), 경각(눈 깜짝할 사이), 삽시간(빗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찰나(1/75초, 약 0.013초).
“일각천금(一刻千金)”, “일촌광음일촌금(一寸光陰一寸金)”이라는 말처럼, 시간은 금보다 귀하다.
붓다는 삶과 죽음이 호흡 사이에 있다고 했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매 순간이 새로운 출발선이며, 매 발걸음이 새로운 시작이다.
인간의 존재와 의미
우리의 삶은 짧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다. 소통의 단절, 애정의 단절, 신뢰의 단절은 인간적 삶이 아니다. 우리는 화합하고 사랑하며 생명의 환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선물과 같다. 겸허히, 겸손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의 작은 의미이자 존재의 이유다.
공주대학교 행정학 박사 연구교수 canghuan@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