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사회가 정녕 末世인가?

2025-08-31     김창환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교수
사진=뉴시스 제공.

아들아, 나를 제발 개처럼 대해다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퍼져가는 이 말은 그냥 웃어넘길 농담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에 대한 처절한 절규이다.

최근 한 8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식들은 “병원에 맡기자니 돈이 들고, 집에 두자니 귀찮다”며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둔 채 어머니를 홀로 놔두고 몇 주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노모는 기력이 다해 쓰러졌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자식들은 강아지를 위해서는 고급 사료와 수제 간식을 정기적으로 배달시켜 두었다. 개는 살았고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좁은 방에 오랜기간 방치한 자식도 있다. 

그런데 같은 집의 반려견은 하루 세 번 산책을 나가고, 반려견 미용실에 정기적으로 데려가 털을 손질받았다. 부모는 방치하는 사람이 개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는다. 경로사상(敬老思想)은 사라지고 경견문화(敬犬文化)가 생겼다.

요즘 반려견 생일파티가 유행이다. 전용 케이크를 주문하고 파티 모자를 씌우고 꽃다발과 선물까지 준비한다. 반려동물 보험, 유전자 검사, 명상 음악, 전용 마사지숍까지 있다. 고급 애견 호텔은 하루 숙박료가 수십만원에 이르며 ‘반려견 전용 수영장’도 있다. SNS에는 '우리 가족'이라며 강아지 사진이 넘쳐난다. 개에게 고급모자를 씌우고 선글라스까지 쓴 사진도 올라온다.

개를 사랑하는걸 탓할 일은 아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려견만큼 위로를 주는 존재가 어디있겠는가? 

문제는 나이든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자식이 결혼하여 분가를 하고나면 그 순간부터 부모의 관심서열이 개만도 못하게 된다. 가끔씩 전화하고 명절때 찾아가다가 나이가 더 들면 요양원으로 보낸다. 

요양원에 부모를 보내고 나면 처음에는 매주 찾아오다가 그 다음 해에는 한달에 한번 찾아오고 그다음 해부터는 명절에만 찾아온다는 것이다. 결국 늙은 부모는 오지않는 자식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것이 현대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이클이라는 것이다.

부모를 끝까지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개를 위하는 마음의 '반의 반' 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에게 쏟는 비용의 반만이라도 부모님 챙기는데 쓰는게 인간의 도리아닌가? 개에게는 명품 옷을 입히고 부모에게는 싸구려 옷을 입히는 사람도 많다. 

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애지중지 키워낸 자식이 부모보다 개에게 정성을 쏟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함을 넘어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주말에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그야말로 개들의 천국이다. 온갖 치장을 한 개들이 주인을 끌고 다니고 있다. 고급 개모차에 개를 태우고 가족이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개를 소중히 안은 젊은 엄마가 앞서가고 그 뒤에 아들 딸과 남편이 따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게 현대판 가족서열이다. 공원벤치에서 노인 몇분이 앉아서 물끄러미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인을 특별히 우대해 달라는게 아니다. 
경로사상이 사라진걸 탓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가족으로 여겨달라는 것 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은 정성의 만분의 일만 돌려주면 되는 일이다. 
자식들에게 차마 말하진 못하지만 속으로 외치는 노인들의 아우성이 있다. 

"아들아, 나를 제발 개처럼 대해 다오"

이 사회가 정말 末世인가?

잔정으로 도덕 재무장이 절실하다. 

元亨利貞 天道之常 事必歸正 嗚呼痛哉라!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연구교수 한국의정연수원 교수 
대한노인회 정책위원 
서산문화원 명심보감 논어 講師 
뉴스비전 칼럼니스트 
김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