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안보 위해 ‘원전 회귀’ 가속화
유럽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중 확대 속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각국이 화석 연료 의존을 줄이고 ‘기저 전원’으로서 원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7월 초 에너지부 산하에 작업반을 구성해 원전의 경제성과 기술적 가능성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2028년까지 원자력 발전 재도입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전력의 70%를 원전에 의존했지만, 유럽연합 가입 조건에 따라 2009년 국내 원전을 모두 폐쇄했다. 현재는 러시아산 전력과 천연가스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으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 재가동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벨기에도 지난 5월 연방의회가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핵 포기 정책’을 철회했다. 드웨버 총리는 2003년 제정된 핵 폐기법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하며, 새로운 원전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역시 1980년대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을 포기했으나, 멜로니 총리는 “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지난 2월 원전 재가동 법안을 각료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폴란드는 2026년 첫 원자로 건설을 시작할 계획이다.
재생 에너지는 유럽연합 전체 발전량의 47%를 차지하며 포르투갈 71%, 스페인 56% 등 일부 국가는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송전망과 인프라 부족으로 지난 4월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안정적인 전원’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강조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건설 주기가 짧고 비용이 저렴한 소형 모듈 원자로(SMR)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루마니아, 스웨덴, 에스토니아가 SMR 도입을 검토 중이며, 세계은행도 6월 원전 자금 조달 금지를 해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해 원전 운영과 신규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2023년 마지막 3기의 원전을 폐쇄하며 ‘탈원전’ 정책을 유지했지만, 전력 수입의 절반 이상을 프랑스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메르츠 총리는 원전 재가동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원전을 ‘저탄소 에너지’로 인정하고 투자 지원을 승인했다.
세계적으로도 원전 회귀 흐름은 강해지고 있다. 일본 간사이 전력은 7월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지질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원전 연료인 우라늄의 농축 능력 40%를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어, 유럽 국가와 기업들은 독자적 연료 공급망 구축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유럽은 이제 원전 재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원전은 다시금 중요한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