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만든 ‘피서 경제’…일본 소비지형 바꾼 실내 수요 급증
2024년 여름, 일본 전역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이 소비 트렌드에도 뚜렷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시민들은 시원한 실내로 몰려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화관, 실내 놀이공원, 배달 서비스 등 실내 기반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월 22일 보도에서 “폭염을 피하려는 수요가 실내 경제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집계한 ‘JCB 소비 실시간 지수’에 따르면, 6월 하순 일본 내 영화관 소비액은 전년 동기 대비 51.9% 증가했고, 6월 상순도 56.0% 증가하며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놀이공원 소비는 4.6% 감소해, 실외 활동 회피 경향이 확연히 드러났다.
도쿄 도요시마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선샤인 시티’는 올해 6월 방문객 수가 기록 집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고, 전망대 방문객도 전년 대비 약 5% 증가했다. 일부 실내 시설은 야간 운영을 연장하며 피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실내골프장 ‘골프넥스트24’ 역시 여름철 이용객이 평소보다 10~20% 증가했으며, 7~8월 회비 면제 혜택 등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식음료 소비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JCB 데이터에 따르면, 6월 하순 배달 중심 외식업의 전자상거래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했다. 반면, 바비큐 등 실외형 외식 소비는 10.4% 감소했다. 도쿄 스미다구의 한 29세 여성 회사원은 “편의점이 집에서 1분 거리지만, 더워서 배달로 해결한다”고 밝혔다. 집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날씨가 소비행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폭염은 단순한 날씨 현상을 넘어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요금 상승과 함께 생활비 부담이 가중되고, 신선식품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서 수요에 기반한 실내 소비가 침체된 외부 경제 활동을 일정 부분 보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내각부의 경제관찰자 조사에서도 도호쿠 지역 택시 기사들이 “무더위로 승객이 평소보다 많다”고 증언했으며, 미쓰비시 UFJ 연구소가 실시한 여름 레저 트렌드 조사에서도 실내 시설의 방문자 증가율(72.2%)이 실외 시설(29.4%)보다 현저히 높았다. 폭염과 태풍을 주된 원인으로 분석한 이 조사는, 만약 2025년 여름에도 같은 고온 현상이 반복된다면 유사한 소비 패턴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기준 일본 전국 153개 관측소 중 122곳에서 평균 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7월 들어서도 35도를 넘는 ‘고온의 날’이 이어지고 있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기후는 ‘피서 경제’라는 새로운 소비 흐름을 더욱 공고히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