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맥주 소비 사상 최저…전통 양조장 1500곳 위기

2025-07-22     유정우
사진=뉴시스 제공.

독일의 맥주 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연방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독일 내 맥주 판매량은 3,450만 리터로, 이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감소한 수치로, 독일 맥주 업계 전체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맥주 양조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이번 소비 감소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을 넘어 문화적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맥주 소비 감소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미 2013년 독일인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07리터였지만, 2023년에는 88리터로 감소했다. 2014년과 비교해보면, 2024년 맥주 판매량은 무려 15.1% 줄어든 상태였다. 2024년 유로컵이라는 특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하락세를 멈추지 못한 상황에서, 2025년의 급감은 업계에 심각한 타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 맥주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비어가르텐(Biergarten)’도 이번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19세기 뮌헨에서 유래한 비어가르텐은 야외에서 맥주를 즐기는 공간으로, 독일 여름의 일상 풍경 중 하나였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지하 저장고 위에 밤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러한 문화는 오랜 시간 이어져 왔지만, 지금은 그 전통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독일에는 현재 약 1,500개의 양조장이 있으며, 많은 업체들이 생존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특히 중소 양조장들은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더욱 취약하다. 피팅스 맥주의 총지배인 폴크 굴은 “날씨는 맥주를 마시기에 완벽하지만, 업계는 축하할 일이 없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맥주 소비 감소의 원인은 다양하다. 건강과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고령화와 더불어 무알코올·저알코올 음료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독일 ‘Z세대’ 중 정기적으로 맥주를 마신다는 비율은 24%에 불과하며, 이전 세대일수록 그 수치는 점점 높아진다. 운전 중 음주 단속 강화, 무슬림 이민자 증가, 일반 탄산음료와 같은 대체재의 확산도 모두 맥주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의 느슨한 음주 연령 기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14세 이상이면 부모와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고, 16세 이상이면 단독 구매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전 연방 보건부 장관은 16세 미만의 음주를 전면 금지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설문조사에서는 독일인의 65%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독일 맥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문화의 일부이자 국가 정체성의 한 축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비 감소는 이 전통 산업에 구조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 흐름이 지속될 경우 독일 맥주 산업은 되돌리기 어려운 전환점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