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통과, 글로벌 경제 위기 불씨 될까

2025-07-14     박준형 기자
사진=뉴시스 제공.

2025년 6월 17일, 미국 상원이 ‘미국 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 지침 및 설립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암호화폐 산업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호주 '대화' 사이트가 9일 보도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처음으로 포괄적 규제 대상으로 삼는 이 법안은 산업계에는 승리로 평가받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글로벌 경제 위기의 가능성을 키우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암호화폐는 본래 중앙집중화된 통화 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초기 암호화폐는 금과 유사한 개념으로, 가치와 공급이 정부가 아닌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지는 탈중앙화된 자산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현재 암호화폐의 실상은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기대하게 만드는 ‘고위험 투기 자산’, 혹은 일종의 ‘카지노’에 가깝다는 비판도 많다.

이러한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와 연동되어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로, 일반 투자자와 기업의 신뢰를 얻기 위한 도구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이번 법안 통과 이후, 아마존이나 월마트 등 미국의 대형 기업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업계의 판도 변화를 시사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만약 수많은 기업이 각기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게 된다면, 소비자는 어떤 코인을 사용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마존 토큰으로 월마트에서 결제가 가능할까? 각 기업의 코인은 같은 가치를 유지할까? 이러한 질문은 화폐의 기본 전제인 ‘교환 가능성’과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더 큰 위험은 스테이블코인의 급속한 팽창이 금융 시스템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다. 예를 들어, 한 대형 기업이 1,000억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미국 국채 등 자산으로 뒷받침한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이 지나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투자자들은 해당 스테이블코인의 실질 가치에 의문을 갖고 대량 환매를 시도할 수 있다. 기업은 이를 막기 위해 자산을 급매도하게 되고, 미국 국채 시장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금리 급등으로 이어지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에 연쇄적인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는 과거 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 그 위험성이 입증된 바 있다.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자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켰지만, 결국 환율 유지에 실패하면서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국가가 통화를 보증했지만, 이번에는 기업이 발행 주체라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

물론 이번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업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규제 당국은 일정 수준의 자산 보유를 의무화하는 등 안정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실리콘밸리 은행 사태에서 보듯, 미국 금융당국 역시 모든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금융의 장을 여는 혁신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잘못된 설계와 규제의 허점은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