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암의 열하일기가 오늘에 주는 울림!
한중관계 개선에 청신호
1778년, 조선의 한 선비가 압록강을 건넜다. 이름은 박지원, 자는 연암. 그는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떠나는 사절단에 수행원으로 동행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단순한 외교 임무를 넘어, 조선 지성사의 판도를 뒤바꾸는 사유의 기록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여행기’라는 형식 안에 갇히기엔 그 내용이 너무도 파격적이다. 연암은 길 위에서 본 모든 것들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조선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조선은 낙후되었는가? 왜 청나라에서는 상업과 기술이 발전하고, 조선은 이를 ‘오랑캐의 것’이라며 외면하는가?
그는 청나라의 변화된 모습 속에서 조선이 지닌 고루함을 직시했고, 여행은 곧 성찰이자 비판이 되었다.
연암의 시선은 실로 근대적이다. 그는 혈통이나 고정관념이 아닌 문명의 실질적 수준 — 제도, 기술, 사고방식 — 에 근거해 야만과 문명을 구분한다. 조선은 ‘소중화’라는 허상을 붙잡고 있지만, 실제로는 청나라가 훨씬 앞서 있다는 사실을 그는 부끄러움 속에 깨닫는다.
이처럼 열하일기는 조선 중심의 세계관을 흔들며, 사고의 경계를 넓히는 용기 있는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체 또한 파격적이다. 연암은 구어체와 해학, 풍자, 야담까지 동원해 고루한 문장 규범을 깨뜨렸다. 기존 유교 문인의 고답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당대 현실과 생생히 호흡하는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열었다.
그것은 단순한 수사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문체에는 ‘백성을 위한 언어’, ‘현실을 드러내는 언어’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연암이 ‘본 것을 믿고, 느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경전에 갇힌 글쓰기가 아닌,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서술로 시대를 기록했다. 그래서 열하일기는 문헌이 아니라, 생생한 시대의 증언이며, 지식인의 고백록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타자를 ‘낯선 것’이라 두려워하고, 안일한 자기 우월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그럴 때 열하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낯선 곳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그렇게, 18세기의 기록이 아닌 오늘의 질문으로 살아 있다.
때마침 지난 6월 19일 제18회 승덕 국제관광문화페스티벌 행사에서 특별히 연암(燕巖)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단편 드라마 시사회가 거행되었는데, 한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시점을 고려하면 그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시 정부 공식 개막식 행사에 열하일기를 6편의 드라마로 제작한 중국 감독과 제작 PD가 소개되었고, 연암 박지원 선생의 7대 종손과 반남(潘南) 박씨 종친회 부회장과 함께 이상기 사단법인 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 그리고 관광 분야 파워 블로거도 공식 행사 무대에 등장해 특별히 소개되기도 했다.
일개 지방 도시에서 이루어진 사안이지만, 이 같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는 이 시점에 무엇을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작금의 한중관계는 단순히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넘어, 한미 경제공동체로 진전되는 상황과 복잡하게 얽힌 국제 상황과 맞물려 각자도생하는 상황에서도 서로의 실리를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하는 처지다.
시대와 주변 여건,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중국(승덕시)의 날갯짓을 단순히 한국 관광객 유치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그 내면 깊은 곳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지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무엇보다 한중 교류ㆍ협력은 경제적 측면을 뒷받침하는 인문ㆍ역사학적인 기초 위에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창권 대기자 ckckck1225@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