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후손과 당시 필담자 후손과의 '역사적인 만남'... "생생한 교류 발자취"
한중지역경제협회, 승덕시와 연암의 업적을 기리는 정기적인 기념행사 추진에 공감대 형성 박찬구 7대 종손 중심으로 T/F팀 구성, 조직적인 대중 활동 전개
우리의 역사는 한민족이 걸어온 발자취이자 기록이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여러 사실들을 현재의 시각과 평가에 의하여 재발견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어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창조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와 관점에서 근대 조선 시대 와 청나라 시대간의 교류의 발자취를 돌아볼때 그 중심에 조선시대의 연행사(燕行使)였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는 오늘의 한중관계의 시금석이 될 수 있는 평가가 나온다.
<열하일기>는 연암(燕巖) 박지원이 1780년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중국 연경(燕京, 북경)을 거쳐 열하(熱河)까지 여행하며 감상을 적은 기행문으로 당시 청나라의 백성들의 생생한 삶과 함께 선진 문물을 그려낸 역사적 기행록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당시 청나라의 건륭황제가 공식 사절단 중 두번째로 친히 접견해 주었으며, 또한 그때 중국 3대 공자 사당으로 알려진 문묘에서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지원과 중국측 (胡三多ㆍ후산두어)과의 대담은 길이 역사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호삼다 5대 종손인 호락부 (胡樂夫)는 "당시 호삼다는 박지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열하일기에서 열두 살의 한족 아이 호삼다는 박지원에게 티 없이 청초하고 예의범절이 능숙하며 행동이 우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라면서, "호삼다의 학식을 알아보기 위해 사절단 부사 정원시가 '복숭아'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게 했고, 호삼다가 순식간에 시 한 수를 읊었고, 즉시 조선 사절단은 호삼다에게 붓 두 자루를 하사했는데, 호삼다의 자신감과 지혜로움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고, 이후 호삼다는 건륭 57년(1792)에 임자과에 급제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다.
이에 금번 제 18회 승덕국제관광문화페스티벌 행사에 한국측을 대표해서 공식초청받은 한중지역경제협회 대표단의 요청에 따라 중국측에서 열하일기 연구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백성덕(白成德) 선생님 소개로 당시 필담을 나눈 연암 박지원 7대 종손 박찬구 선생님과 호삼다(胡三多)5대 종손 호락부(胡乐夫) 선생님간의 만남의 장이 마련되었다.
동 만남에서 박만춘 연암 박지원 반남(潘南)박씨 종친회 부회장은 "당시 청나라의 건륭황제가 공식 사절단 중 두번째로 친히 접견해 주었으며, 또한 그때 중국 3대 공자 사당으로 알려진 문묘에서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암과 중국측 호삼다(胡三多ㆍ후산두어)와의 대담은 길이 역사로 남아 있어, 승덕(피서산장)은 당시 청나라와 조선시대의 교류 역사의 현장으로 길이 기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한중지역경제협회 이상기 회장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성역화 사업은 매우 절실하며, 가문의 입장에서도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가문의 영광스러운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조선과 청나라의 교류의 역사가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 인문학적 의미와 함께 정신적 가치가 몇세대를 넘어 수백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한중 교류ㆍ협력 관계측면에서 중요한 역사적인 기초와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금번 방문시 승덕시 정부측과의 공식적인 좌담회에서도 충분한 의견 교환을 통해 연암 박지원 기념사업 관련 더욱 진일보한 발걸음을 내딛는데 공감대를 가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중지역경제협회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7대 종손 박찬구 선생의 제의로 금번 승덕을 방문했던 인사들로 우선 연암 박지원 선생의 대중교류·협력 T/F팀(특히 학술·관광)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