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유로 제치고 세계 중앙은행의 두 번째 준비 자산으로 부상
ECB “제재 우려·지정학 리스크가 금 수요 이끌어”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 11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금이 유로화를 제치고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두 번째로 큰 준비 자산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기록적인 금 구매량과 금값 급등에 따른 결과로, 금은 2023년 세계 공식 외환보유액의 20%를 차지해 16%였던 유로화를 앞질렀다. 달러화는 46%로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2024년에도 1,000톤 이상의 금을 매입해 3년 연속으로 금 대량 구매 기조를 이어갔다. 이는 전 세계 연간 금 생산량의 5분의 1에 해당하며, 2010년대 평균 구매량의 두 배 수준이다. 현재 세계 중앙은행의 총 금 보유량은 약 3.6만 톤으로, 브레튼우즈 체제 당시인 1960년대 중반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 같은 금 비중 확대의 주요 원인은 금 가격의 급등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금 가격은 30% 상승했고, 2024년 들어서도 추가로 27% 올라 사상 최고치인 온스당 3,500달러를 기록했다. ECB는 “중앙은행의 금 축적과 금값 상승으로 시장 가치 기준 금은 달러 다음으로 큰 준비 자산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금은 이자를 발생시키지 않고 보관 비용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와 중앙은행 모두에게 궁극적인 안전 자산으로 간주된다. 특히 금은 유동성이 높고 거래 상대방의 위험이나 제재 가능성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ECB는 지정학적 불안정, 미국의 높은 부채 수준,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 리스크가 금 수요 증가의 핵심 동력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는 제재에 대비한 회피 수단으로 금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1999년 이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중 금이 가장 많이 증가한 10년 중 절반은 해당 국가가 제재 대상이었던 시기였다.
57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제재 우려, 글로벌 통화 시스템 변화에 대한 기대, 달러 의존도 축소가 금 보유 확대의 주요 배경으로 확인되었다. 과거에는 다른 자산의 수익률이 상승하면 금값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2022년 이후 이 같은 상관관계는 사라졌으며, 투자자들은 금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아닌 정치적 리스크 헷지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ECB는 끝으로 “금 가격 상승은 금 공급 증가를 유도해 왔다”며 “중앙은행의 금 비축 수요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금 공급 확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