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유행이 아니라 생존이다

2025-06-08     전병서 칼럼니스트
사진=뉴시스 제공.

한국의 새 정부가 AI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언했다. 겉으로는 강력한 의지로 보이지만, 실상 AI 시대의 진입은 선언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AI는 단순한 기술의 진화가 아닌, 문명의 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으로 시작됐다면, 오늘날의 AI 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넘어 육체와 산업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피지컬 AI’로 진화 중이다. 이는 공장, 병원, 농장, 운전대, 건설현장 등 산업 전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이 격변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AI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다. AI의 속도를 견디고 그 방향을 설정하며, 실제로 활용 가능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0%대 성장률에 허덕이며 일본식 장기 침체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시점에 집권한 세력이라면, 무엇보다 ‘허니문’을 경계해야 한다. 선거는 축제였고 승리였다. 그러나 정치는 생존의 싸움이다. 허니문이 끝나면 메이크업을 지운 민낯의 실력이 드러난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바로 AI라는 광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전략과 실천이다.

유행으로 이룬 성과는 성장이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팽창’이다.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고 했다. 지금은 태풍 앞에 서 있는 것뿐이다. 그 바람이 멈추면 날개 없는 모든 존재는 추락한다. 성공의 기쁨에 도취된 집권 세력에게 가장 위험한 함정은 ‘승리의 환상’이다. 선거에서의 스토리텔링은 주술이다. 때로는 불안을 잠재우고 행동을 유도하는 유용한 마법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도 그 마법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기대와 희망은 현실을 가리는 환각이 되고 만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 리더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은 ‘학습 민첩성’이다. 이제 직무 관련 지식의 유효기간은 5년도 채 되지 않는다. 30~40년 전의 경륜과 경험으로 지금의 세대를 설득할 수 없다.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리더이며, 그 리더가 시대의 언어와 기술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 유연성 없는 리더십은 조직 전체를 낡은 틀에 가두고 만다. 새로운 세상의 지도자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학습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지식과 기술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은 ‘기술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프라’와 ‘칩’이 없으면 말잔치에 불과하다. AI 인재를 길러도, 조직을 새로 짜도, 결국 고성능 GPU가 없으면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AI 칩의 확보다. 이를 위해선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처럼, 한국도 국가 차원의 ‘행정명령’을 발동해 전략 자원을 레버리지로 삼아야 한다.

예컨대, 한국이 세계에서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무기로 삼아, 이를 공급받는 기업이 일정 비율의 GPU를 한국에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독점적 지위를 가진 NVIDIA 같은 기업과의 전략적 계약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AI 칩 확보는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이고 생존의 조건이다.

동시에, AI의 뇌가 칩이라면, AI의 몸은 데이터센터다. AI 경쟁의 다음 전장은 바로 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될 것이다. 데이터는 이제 “새로운 석유”다. 그러나 이 석유를 정제하고 저장하는 데이터센터는 자연이 아닌 국가가 만든다. ​

AI 시대의 패권은 바로 이 인프라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좌우된다. 미국은 전력망 노후, 부지 부족, 환경 허가 문제로 데이터센터 확장이 병목에 걸려 있다. 반면 중국은 2022년부터 ‘동수서산’ 전략을 추진하며, 8개의 허브에 61억 달러를 투자해 원전과 재생에너지 기반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한국은 국내의 전력, 환경, 부지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해외와 합작하거나 외주하는 방식으로 확장해야 한다. 데이터는 빛의 속도로 전송된다. 굳이 국내에만 센터를 둘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효율적으로, 안정적으로 연결되느냐’​다. 지금 당장 고효율 해외 데이터센터 확보에 나서야 한다.

AI+농업, AI+의료(정신건강 포함), AI+환경, AI+K-컬처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한 전략적 융합도 필요하다. 정책의 프레임도 '산업융합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AI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닌, 산업 전체의 재설계다. 이 과정에서 기술, 인프라, 인재, 통찰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일본과 다르지만, 너무도 닮아가고 있다. 추락한 성장률, 잃어버린 세대,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리더십, 익숙한 얼굴들의 반복. 지금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AI 시대는 ‘기회’가 아니라 ‘패배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선거에서 성공은 하루 만에 잊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완전히 다른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실력으로 결정된다. 새정부가 출범한  지금이 바로 그 첫 장이다.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전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