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입 본격화
전통 금융과 암호화폐 융합 가속
전통적인 금융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레제코는 5월 23일 보도를 통해 JP모건,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월가 주요 은행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 은밀히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기존 암호화폐 전문 기업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전통 금융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은행이 발행하려는 디지털 토큰은 컨소시엄 방식으로 구성되며, Zelle과 같은 포인트 투 포인트 결제 플랫폼, 실시간 결제 청산소 등으로부터 기술적 지원을 받게 된다. 목표는 테더(USDT), 서클(USDC) 등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비(非)은행계 스테이블코인에 대항할 수 있는, 보다 신뢰성 있고 규제된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전략적 확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 혁신법’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 법안은 은행과 같은 규제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당 법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서 제안되었으며, 엄격한 준비금 요건과 감독 체계를 포함하고 있어 전통 금융권이 새로운 규제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현재의 2,400억 달러에서 2028년까지 2조 달러 수준으로 급증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법정화폐에 연동된 디지털 자산으로, 가치 안정성과 블록체인 기반 기술의 장점을 결합해 빠르고 프로그래머블한 결제를 실현할 수 있다.
은행들이 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는 세 가지 주요 이점이 있다. 첫째, 결제 시스템의 현대화, 둘째, 지금까지 암호화폐 기업들이 독점해온 금융 혁신 영역으로의 진입, 셋째, 디지털 결제 인프라에 대한 전략적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은행은 이미 초기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JP모건은 2019년 ‘모건 코인’을 도입하여 기관 간 내부 결제에 활용해왔으나, 이는 한정된 환경에서만 사용됐다. 반면, 이번 컨소시엄형 스테이블코인 계획은 보다 넓은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본격적인 외부 사용자와의 거래를 겨냥한 확장 전략이다.
2024년 기준, 스테이블코인 거래 총액은 28조 달러를 돌파하며, 전통적인 카드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거래량을 초과했다. 이는 플랫폼 간 이체, 자동 차익거래 등을 포함한 수치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수치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테더가 1,500억 달러 이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서클이 약 610억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두 기업이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거래의 99% 이상이 달러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달러 중심 구조는 유럽에서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은 디지털 유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스테이블코인 경쟁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 싸움이 아니다. 이는 디지털 화폐 기반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둘러싼 구조적 변화의 서막이다. 전통 금융권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암호화폐 시장과 금융 시스템 간의 융합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며, 미래 국제 결제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