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만물이 '일장춘몽'이라고 느낕 때,바로 그것이 "득도(得道)"

2025-05-20     김창환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교수
사진=뉴시스 제공.

권력의 무상함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래서 '일장 춘몽'이라 했다. 

영원히 봄이 이어질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봄은 가고 불현듯 여름이 다가오는 자연의 순리를 빚대는 말이다.

그래서 지나간 꿈처럼 덧없는 인생을 한탄할 때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다.

이와 관련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시가 있다.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어제밤 비온 뒤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오늘 아침 바람결에 꽃이 곧 지니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안타깝네 한 봄의 온갖 보람이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바바람 치는 속에 왔다 가누나!"

"어젯밤 비 온 끝엔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결엔 꽃이 져버렸다. 

안타깝구나, 한 봄의 온갖 보람이, 비바람 치는 속에 왔다 가버렸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운곡(雲谷) 송한필(宋翰弼, 1539~?)이 봄날 안타까운 심정을 읊은 ‘偶吟(우음)’이란 시다. 

시인은 형 익필(翼弼)과 함께 문명을 떨쳤다. 아버지 송사련(宋祀連)이 얼손(孽孫)이라서 신분상의 제약을 받다가 아버지가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586년 안처겸의 역모가 조작임을 밝혀지자, 익필 형제들이 안씨 집의 노비로 환속되자 성명을 바꾸어 도피하였다. 

3년 뒤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벌어진 기축옥사(己丑獄事)로 많은 동인들이 처벌되자, 그의 형제들도 신분이 회복되었다. 

그 뒤 동인들을 비난한 일로 이산해(李山海)의 미움을 받아 형 익필과 함께 희천으로 유배갔다가 1593년 풀려났다. 

이이는 성리학을 가지고 토론할 사람은 익필 형제뿐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익필 형제는 아버지로 인해 신분이 노비가 되기도 하였지만 당대 석학인 이이와 가깝게 지내며 그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봄에는 꽃(개화)과 바람(훈풍)이 좋고, 온갖 생물들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활기가 넘치는 계절이다. 

특히 개나리와 진달래는 일찍 피어서 봄을 알리고 있고, 벚꽃이 활짝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봄꽃은 아름답게 피었다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한 순간에 져버리니 안까까울 수밖에 없다.

우리네 인생의 청춘도 영속적일 줄 알았던 권력도 언젠가는 한 순간에 져버리는 것이다.

이같은 순리를 깨닫기가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일장춘몽이라는 점을 폐부로 느낄때, 이를 두고 득도(得道)했다고 한다.

김창환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교수  canghuan@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