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전쟁 속 중국 기업, 싱가포르 상장으로 눈 돌린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부 중국 본토 및 홍콩 기업들이 동남아 진출과 싱가포르 증시 상장을 새로운 탈출구로 삼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교도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 출신 최소 다섯 개 기업이 향후 12~18개월 내에 싱가포르에서 상장 또는 주식 배정 계획을 추진 중이다.
상장 대상 기업에는 에너지 기업, 헬스케어 그룹, 생명공학 기업 등이 포함되며, 일부는 싱가포르 거래소(SGX)를 통해 최대 1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홍콩 증시에 집중돼 있던 중국 기업들의 상장 전략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변화는 미국의 상장 규제 강화와 보호무역 기조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 은하국제증권(CGS International)은 최소 두 개의 중국 기업과 협력해 올해 내 SGX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동남아 진출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관심이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CGS 투자은행 담당 임원 쑤쥔친(蘇君钦)은 "지금의 무역 전쟁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이미 국제 질서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은 소비 부진과 지역 내 경쟁 심화로 인해 해외로의 확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싱가포르 당국도 상장 유치를 위한 제도 개편에 나섰다. **싱가포르 금융관리국(MAS)**과 **SGX 규제회사(SGX RegCo)**는 IPO 요건 완화, 청약서 기준 간소화, 메인보드 상장 기준 재조정 등의 방안을 통해 시장의 문턱을 낮추고 투자자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싱가포르의 자본시장 파트너 쉐자취안은 "중국 기업들로부터 소비, 헬스케어, 제조업 분야 상장 문의가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는 2차 상장 옵션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무역 긴장이 완화된다면, 싱가포르 IPO 시장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싱가포르 증시는 아직 제한적인 활기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SGX에 새로 상장된 기업은 단 한 곳으로, 자동차 유통업체 Vin's Holdings가 4월 켈리보드에 입성하며 600만 위안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반면, 싱가포르 생명공학 기업 MiRXES는 홍콩을 선택해 오는 5월 23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싱가포르를 신흥 상장지로 적극 모색하는 가운데, 향후 동남아 증시가 홍콩과 미국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