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정책에 흔들리는 美 학계… 유럽은 과학 인재 유치 나서

2025-05-18     이창우 기자
사진=뉴시스 제공.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 최고 대학 및 일부 유학생에 대한 규제가 학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가운데, 오랜 기간 미국의 과학 연구 인재를 모셔가고자 노력해온 다른 국가들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성, 평등, 포용성을 장려하는 정책을 ‘각성(Woke)’이라 비판하며 이를 시행하는 주요 대학들에 대한 연방 자금 삭감을 예고하거나 단행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가와 같은 이슈에 반대하면서,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 방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노골화되었다. 동시에 연구비 삭감과 까다로운 이민 정책이 맞물리며, 미국 내 연구자와 과학자들은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과학 기술 기반과 장기 목표에 위협이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자가 미국을 떠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인재 유출을 넘어, 기술 혁신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유럽은 이 혼란 속에서 전략적 기회를 포착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향후 2년간 5억 유로를 투입해 유럽을 ‘연구자 유치의 자석’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며,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역시 1억 유로를 투자해 프랑스로 과학 인재를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랑스는 이미 ‘프랑스 과학 연구 선택’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유럽 내 지속적인 연구를 원하는 해외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소르본대 연설에서 “전 세계 연구진이 우리와 함께 단결하자”고 호소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원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연구 프로젝트가 취소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며 미국의 퇴행적 움직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유럽의 공세는 실질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과학 전문지 《네이처》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과학자의 75%가 미국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선호 국가는 유럽과 캐나다였다. 대학원생 응답자 중에서도 대다수가 유사한 경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U 각국도 공동 대응에 나섰다. 독일, 프랑스를 포함한 13개 회원국 관료들은 EU 집행위원회에 공동 서한을 보내, 미국에서 이탈하는 우수 인재를 환영하며, 지금이 유럽이 리더십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다니엘 벨은 유럽이 더 대담한 조치—예컨대 연구 투자 기금 설립, 미국 내 연구실 매입, 임시 거주권과 취업 허가 제공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은 사회보장과 의료 접근성 면에서 비교 우위가 있다”며, “미국을 떠나는 인재들이 유럽에서 머물며 기술과 창의력, 다양성을 이식하는 새로운 유럽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자 유치 경쟁은 이제 단순한 연구자 확보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미래 패권의 향방을 가를 전략적 싸움이 되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