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福)은 베품에서 온다
남에게 복을 베풀면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유인정(留人情)이면 후래(後來)에 호상견 (好相見)이니라"
모든 일에 인자하고 따뜻한 정을 남겨두면 뒷날 서로 좋은 낯으로 보게 된다는 구절이 명심보감에도 나온다.
이와 관련 조선조 9대 임금 성종이 민정시찰을 나갔을 때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조용히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시찰에 몰두하다 그만 날이 어두워 산중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성종은 이리저리 헤매든 길에 날도 저문데다 급기야 배까지 고파왔습니다.
외딴 가옥에 들어가 "이보시오! 주인장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소? 길 가는 나그네인데 그만 길을 잃었소!", "죄송하지만 보시다시피 방이 한칸밖에 없습니다. 누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쉬실 수 있을런지요?",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잠행을 수행하던 성종이 집 앞에 다다르자 젊은 사내가 부엌 에서 메밀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성종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거 이보시오! 메밀죽 한그릇만 얻어먹을 수 있겠소?" 그러자 사내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네 당연히 대접해 드려야지요!"
그러더니, 김이 무럭무럭 나는 메밀죽 한사발을 떠서 상을 내왔습니다. 하도 먹음직스러워, 성종이 얼른 한입 떠 먹으려 하자 사내가 급히 만류했습니다.
"나으리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먼저 드릴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며 병석에 누운 어머니한테 먼저 메밀죽을 올린 후 성종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산길을 헤매다 배가 출출하던 차에다 얼마나 죽맛이 좋았던지 성종은 그 자리에서 메밀죽 두 사발을 금새 다 먹어치웠습니다.
"거참 메밀죽 한번 잘 먹었소! 내 이렇게 맛 있는 메밀죽은 생전 처음이오!" 배가 든든해 지고 나서보니 그동안 사내는 한 숟갈도 먹지 못하고 윗목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인장은 왜 아무것도 안 드시오?"
"배가 불러 괜찮습니다!"
성종이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는 밖을 나와 몰래 부엌을 들여다보니 메밀죽을 끓이던 가마솥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성종은 사내의 마음가짐에 짐짓 놀라며 감탄했습니다.
"거 참 미안하오! 내가 배가 고픈 나머지 그대의 저녁까지 몽땅 빼앗아 먹었구려!"
" 아닙니다! 소인은 사실 메밀묵을 쓰기
전에 이미 허기를 채웠습니다!" 성종은 다시 한번 사내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했습니다.
"실례이오만 혹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성은 이가고 이름은 덕수라고 합니다!"
"이가면 나하고 성이 같으니 우리 의형제를 맺는 게 어떻겠소?", "나리 좋을 대로 하시지요!", "그럼 내가 그대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니 형을 하고 댁은 아우를 하면 될 듯 싶소. 어떻소?", "네 좋습니다!"
이렇게 사내와 성종 임금은 의형제를 맺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성종이 그 집을 떠나면서 사내에게 말했습니다. "덕수, 내 이 은혜는 언제든 꼭 갚을 걸세!" "네. 형님! 무슨 은혜랄거 까지요. 지나다 배 고프시면 언제든 들리시구려!"
그렇게 덕수와 성종은 헤어졌습니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자 덕수의 어머니 병세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에 한 약방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소요 약재가 값이 너무 비싸서 구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덕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간호하는 데에만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빨간 옷을 입은 지체 높은 양반이 덕수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덕수가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하인 몇을 데리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뉘신데, 저를 찾으십니까?
"그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네. 덕수라고 하옵니다만, 뉘신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저를 찾아 오셨는지요!"
"내가 집을 맞게 찾아왔구나!
자, 안으로 좀 들어가자!
나는 이 나라의 어의(御醫) 이니라!"
어의라는 말에 덕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런데 어찌 어의께서 이런 곳까지!..."
"임금님께서 보내셨느니라!
메밀묵 얻어먹은 형님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거라 하셨느니라!"
그제야 덕수는 메밀묵 형님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의의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병세가 완연히 좋아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집 안에서 장작을 패던 덕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용포를 입은 성종 임금님이 떡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우 있는가? 내 메밀묵 3그릇 값을 갚으러 왔네!", "아이구 형님! 아니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덕수는 성종으로부터 후한 상을 내려받아 평생 넉넉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근원이 깨끗하고 후덕하면 그 인생 흐름도 깨끗하고 복 받는 법입니다. 근원이 흐리고 탁하면 그 흐름도 흐리고 탁해집니다. 사물의 모든 것은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주위에 많은 복을 베풀어서 덕을 쌓는 멋진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최원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