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고의 품격은 '상지상(上之上)',"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사람에게도 품격의 등급이 있다.
이와 관련 SNS에 알아듣기 쉽게 대화 형식을 빌려 설명한 구수하고도 아주 일목요연한 스토리가 회자 되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식 대화다.
"스승님!
같은 이름의 물건이라도 그 품질에 상하가 있듯이, 사람의 품격(品格)에도 상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지.”
“하오면, 어떠한 사람의 품격을
'하(下)'라 할 수 있겠 습니까?”
“생각이 짧아 언행(言行)이 경망(輕妄)스럽고, 욕심(慾心)에 따라 사는 사람을 '하지하(下之下)'라 할 수 있지.”
“하오면, 그보다 조금 나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옵니까?”
“재물(財物)과 지위(地位)에 의존(依存)하여 사는 사람의 품격은 '하(下)'라 할 수 있고,
지식(知識)과 기술(技術)에 의지(依支)하여 사는 사람은 '중(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러면 '상(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신의 분복(分福)에 만족(滿足)하고, 정직(正直)하게 사는 사람의 품격을 '중상(中上)'이라 할 수 있으며, 덕(德)과 정(情)을 지니고 지혜(智慧)롭게 사는 사람의 품격을 '상(上)'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 하오면, '상지상(上之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옵니까?”
“살아 있음을 크게 기뻐 하지도 않고, 죽음이 목전(目前)에 닥친다 해도 두려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그것이 천명(天命)이라 여기고 겸허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可)히 '상지상(上之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고통스러운 생의 소멸 과정에서도 본인이 덤덤하게 받아 들이며 나름대로 인내와 운명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노력은 참 아름다운 것이다.
‘힘들지만 삶은 살 만한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삶은 결과가 아니고 순간과 순간으로 이루어진 과정이기 때문이다.
양경숙 시인의 <그대는 늙어보았는가>라는 시 구절이 천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남을 위해 헌신한 날들로 젊음을 보냈지만 이젠 왜 고통스러웠는지 알겠더라.
준 만큼 받으려고 했고 담쟁이처럼 기어올라 성취욕을 즐겼지만 다 부질없음을 알겠더라 늙어 보니.
아주 작고 당연한 것에 감사하게 되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겠더라.
새벽이 오면 그 한 날을 산다는 것 어둠이 내리면 조용히 나를 관조하는 것 그런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란 걸 늙어 보니 알겠더라.
그래서 나는 마음이 여유로운 지금이 좋다"
자기의 인생을 운명(運命), 천명(天命)이라 여기고 겸허하게 받아 들일때 아름다운 소풍이 되는 것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