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록위마와 숙맥의 시대

2025-02-14     이광식 칼럼니스트 
사진=뉴시스 제공.

세상살이에서 냉철한 판단력은 매우 중요하다. 순간의 결정이 미래를 좌우하는 경우가 하다하다.

이와 관련 우리는 바보처럼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그래서 숙맥은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데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이다.

이에 이성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고, 변명이 사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숙맥의 시대'라 한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확연히 다른 곡물인데, 눈으로 직접 보고도 분별해 내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이처럼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 쑥맥!' 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숙맥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콩과 보리뿐이겠는가?

상식과 비정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과 평상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해를 보고 달이라 하고, 달을 보고 해라고 하면, 낮과 밤이 바뀌는 초유의 혼돈과 혼탁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 에 전하는"지록위마" (指鹿爲馬)의 고사에 나온 고사이다.

진시황제가 죽고 2세 호해(胡)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때 그의 곁에는 환관인 조고가 있었다. 

간신 조고는 진시황제의 가장 우둔한 아들인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시험 하기로 한다. 

그는 신하들이 모두 모아놓고 사슴(鹿)을 호해에게 바치며 말(馬)이라고 했다.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자, 

조고는 신하들 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신하들은 세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침묵파' 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못 말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을 선택한 이른바 기회주의파 부류 였다. 

또한 부류는 소신껏 양심을 걸고 발언하는 '사슴파', 이른바 양신(良臣)파였다.

분명 말(馬)이 아니었기에 목숨을 걸고 사슴(鹿)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한 양신파 신하들이었다.

마지막 한 부류는 '숙맥파'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슴이라고 하는 순간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슴과 말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이 되기를 선택한 '간신파 '신하 들이었다.

그리하여 황제주위에서 호가호위하는 숙맥들만 살아 남고 모든 신하는 죽임을 당했다.

바야흐로 '숙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숙맥의 시대는 채 몇 년도 가지 못했다. 

세상을 호도하는 썩은 권력은 절대로 오래 갈수가 없는 것이다.

더는 숙맥으로 살지 않겠다는 국민들이 봉기해 결국 진나라는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신하는 간신. 충신, 양신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평소 임금에게 무조건 따르는 충신보다 올바르게 진언하는 양신(良臣)이 되어야만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수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 주는 반면교사의 좋은 사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