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위험 속 원유 시장, 80달러 돌파
러시아 제재와 중동 휴전의 여파 러시아 제재 강화, 원유 공급 감소 우려 공급망 긴축 가능성과 대체 생산의 역할 중동 긴장 완화에도 시장은 신중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 원유 가격이 5개월 만에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하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월 15일,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날보다 4% 상승해 배럴당 80.7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8월 이후 처음으로 80달러 선을 넘어선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정 체결은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의 관심은 중동의 긴장을 넘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러시아 추가 제재에 집중되면서 원유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1월 10일 러시아 석유 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제재 조치에는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 기업과 노후 유조선으로 구성된 이른바 '유령 함대'를 겨냥해, 제재 회피를 방지하려는 조치들이 포함됐다. 이로 인해 러시아 석유 수출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유 공급에 대한 우려가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월 15일 발표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석유 공급 동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석유 선물 시장에서 매수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 석유 수출은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제재는 공급망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1월 15일 휴전 협정을 체결하며 중동 정세의 일시적 안정이 예상되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일본 금속 및 에너지 안전 기구의 노가미 타카유키 수석 경제학자는 “중동 정세에 대한 시장의 경계심이 약화됐다”고 분석하며,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갈등이 있었던 2024년 9월에도 WTI 가격이 80달러를 넘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중동보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에너지 공급망 변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 석유에 대한 대규모 의존도를 가진 중국과 인도가 미국 제재 강화로 인해 구매 경로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석유의 약 25%를 운반하는 유조선들이 제재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이러한 석유가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조선 시장의 탄력성 부족으로 인해 대체 유조선을 찾는 데 어려움이 예상되며, 이는 해운비 상승과 원유 가격 변동성을 심화시킬 전망이다.
한편, 미국과 비(非)OPEC 산유국들의 생산량 증가는 시장 긴축 완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펙+"의 생산 감산 정책은 이러한 생산 증가를 상쇄하며, 안정적인 유휴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제재 강화와 함께 원유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 석유 산업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며 국제 석유 시장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동의 일시적 안정과는 별개로, 러시아와 관련된 지정학적 긴장감은 당분간 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원유 가격 상승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시장은 새로운 제재의 실행 결과와 "오펙+"의 감산 정책이 균형을 이루는지 주시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