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인(聖人), "가치를 구현위해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

2025-01-09     김창환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교수

老子가 꿈꾸는 이상형은 성인(聖人)이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성인이라는 말을 우선 정리해 본다.

율곡 이이(李耳)는 자기 구원이란 성인이 되는 거라 했다. 그 자기 구원의 길을 산의 등산에 비유했다.

"산을 만나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산이 있다더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 산을 제 눈으로 올려 다 본 사람, 그리고 직접 산을 밟고 올라가 땀을 훔치며, 눈에 가득한 전망을 누리는 사람이 그것이다." 

1단계가 독서이고, 2단계가 이해, 3단계가 체화(體化)이다.

불교에서는 이 3단계를 '문(問)/사(思)/수(修)'라 한다. 문사수(聞思修), 들을 문, 생각 사, 닦을 수. 들었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은 자기를 여과시키라는 뜻이다. 자신의 체로 걸러 받음이다. 그러고 나서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일상에 옮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왕이 되는 것보다 더 높은 성공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으로 쓰는 한자가 聖(성)자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음악(音樂) 최고 성공인을 악성(樂聖), 최고의 바둑 성공인을 기성(棋聖), 詩의 최고 성공인은 시성( 詩聖),
인간 최고의 성공 경지에 오른 성인(聖人)이라 한다.

이렇게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 경지 핵심에 있는 '聖'자는 '耳(귀)'와 '口(입)' 그리고 '王(왕)'자, 이 3 글자의 뜻을 함축한 글자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성공적으로 올랐을 때만 붙여주는 '聖'자를 쓰는 순서이다. '성'자는 '耳(귀)' 자를 맨 먼저 쓰고, 그 다음에 '口(입)' 자를 쓰고, 마지막으로 '王(왕)' 자를 쓴다. '耳(귀)'를 맨 먼저 쓰는 이유는 남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고, 귀로 다 듣고 난 후에 입을 열어야 상대가 만족하기에 때문에 '입(口)'을 나중에 쓰게 만든 것이고, 마지막에 '王' 자를 넣은 것은 먼저 듣고 나중에 말 한다는 것은 왕이 되는것 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공자도 60 세가 되어 서야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했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 먼저 모두 다 듣고 나중에 말을 하는 것이다.

'以聽得心(이청득심)'이라는 말이 있다. 즉 '마음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란 말이다.

'聖人'은 먼저 남의 이야기와 진리(眞理)의 소리, 그리고 역사(歷史)의 소리를 모두 다 조용히 경청하고 난 후에 입을 열어 말을 한다. 

그런데 열심히 듣는다고 해서 다 들리는 것이 아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다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순(耳順)이란 타인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이며 어떤 말을 들어도 이해를 하는 경지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걸 포용하는 경지이다. 

말 배우는 것은 2년이면 족하나, 경청을 배우는 것은 60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을 얻기 위해, 진리를 깨닫기 위해,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한다.

이순(耳順)의 내 귀에 지금도 거슬리게 들리는 말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수양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여기에 더하여 아직도 듣는 것은 뒷전이고 말이 먼저 튀어 나온다.

나는 이 성인을 내가 꿈꾸는 '자유인'으로 읽는다. 우리 말로 성인하면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성인의 본래 뜻은 이런 윤리적 차원을 넘어, 말하자면, '특이한 감지 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만물의 근원, 만물의 '참됨', 만물의 '그러함'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물 흐르듯 살아 가는 사람을 말한다고 본다. 

성인의 성(聖)자를 다음과 두 가지로 푼다. 사전에서의 해석이 우리를 오해하게 한다. 

'성(聖)'을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으로 풀이하기 때문이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적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올은 성인을 '귀가 밝은 사람", "소리를 잘 듣는 사람"으로 본다.

소리를 잘 듣는다고 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일차적으로 신의 소리를 잘 듣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인문정신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소리를 잘 듣는 거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더 나아가, 노자의 생각은 신의 소리를 잘 들을 줄 알고, 사람의 소리를 잘 알아듣는 자만이 통치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타자를 다스린다는 것은 당연히 타자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계시(드러날 정, 呈)를 듣는다(이, 耳)는 것이다. 신의 계시를 듣는다는 것은 곧 인류역사의 보편적 정칙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깨달은 것이 바로 지혜이다. 이 지혜를 얻어야 우리는 자유인이 된다.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과 노자의 성인은 다르다. 유교의 성인은 세속적 도덕규범의 완성자지만,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그러한 도덕 규범을 초월하는 상도(常道)의 내재적 생명 가치를 구현하여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이다.

어원적으로 귀가 밝아 보통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잘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김창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