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벨 탐방

2024-11-19     김창환 칼럼니스트
사진=뉴시스 제공.

오늘은 노벨의 생애를 조명해봅니다.

선각자(先覺者)인 노벨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 노벨상입니다.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은 1,833년 10월 21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벨은 화학자이자 발명가였던 그의 아버지 이마누엘 노벨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고 공부도 잘 하는 영리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공장을 차려 폭발성 액체인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864년도에 공장이 폭발하는 바람에 동생을 비롯,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사고로 인해 그는 스웨덴 정부로부터 공장의 폐쇄를 명령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미치광이로 낙인까지 찍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구를 계속하여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산질 충전물질인 규조토에 스며들게 하여 건조를 시킴으로서 운반이나 보관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제품은 편리하면서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66년도에 완벽한 다이너마이트와 함께 뇌관(雷管)이 완성되었으며 영국(1,867년)과 미국(1,868년)에서 다이너마이트의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를 받은 후에는 더 강력한 폭발성 젤라틴의 개발에도 성공합니다.

노벨은 이들 특허를 바탕으로 다이너마이트 제조 방법을 전수해주고 전 세계에서 로열티를 받아 거부(巨富)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는 원래 바탕이 낙천적인 기질을 소유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이러한 폭발물을 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노벨은 자신이 개발한 무기들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인명을 대량 살상하는 용도로 쓰여지게 되자 자신의 행동에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詩를 쓰기도 했고, 비록 습작이긴 했지만 소설도 쓰는 등 문학인이 되려는 꿈도 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다이너마이트가 세기의 발명품이었으면서도 인류를 살상하는 용도로 쓰이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노벨은 어느날 위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그의 재산 대부분을 노벨재단에 기부키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노벨상이 탄생하게 되었고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노벨은 1,896년 12월 10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가 사망한 지 5년 뒤인 20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 즉 1,901년 12월 10일 부터 시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노벨이 사망한 날이기도 합니다.

노벨상은 물리, 화학, 생리학, 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에 걸쳐 시상을 하였으나 1968년도에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방크에 의해 경제학상이 추가되어 1969년 부터는 6개 부문을 시상하게 되었습니다.

노벨상은 국적이나 인종, 종교, 이념에 관계없이 전년도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노벨의 사상과 삶의 발자취를 짚어보건대 노벨은 대단한 선각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함으로써 후학을 양성하고 인류 역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노벨은 죽었어도 그의 선견지명과 위대한 정신은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아있습니다.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연구교수 
김창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