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탐방]청산리 독립운동 전투와 이스라엘의 전쟁 응집력

2024-10-20     김창환 칼럼니스트
사진=뉴시스 제공.

우리의 청산리 독립운동 전투 전개과정과 이스라엘의 응집력은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빼앗기었던 조국의 땅을 되찾으려는 정신에 있어서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선 청산리 전투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들을 반추해 보겠습니다.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간도의 청산리 일대에서 우리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대파한 전투를 말합니다.

청산리는 중국 길림성 화룡현에 있습니다.

화룡(和龍)은 연길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60여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 민족의 성지(聖地)인 백두산 북동쪽 자락에 펼쳐진 옛 남북국 시대의 우리 발해(渤海) 영토에 속하는 땅입니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화룡시에 위치해 있음으로 해서 우리 국민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깃점으로 우리 독립군 조직들은 국내보다는 간도와 연해주 일대로 옮겨가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간도(間島)와 연해주(沿海州)의 위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아서 오늘 글에 적습니다.

간도는 백두산 이북지방을 일컫습니다.

현재의 중국 길림성과 흑룡강성 동부 일대인데 장춘시와 길림시 쪽을 서간도, 연변자치주와 목단강(牧丹江) 등 동부지역을 동간도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연해주는 극동 러시아 지역으로서 블라디보스톡이 소재한 곳입니다.

이곳 역시도 옛 발해의 영향력이 미쳤던 지역이지요.

일제치하 당시 많을 때에는 군사조직을 갖춘 독립운동 단체가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 450여 개에 이르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청산리전투는 김좌진(金佐鎭) 장군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의병출신인 홍범도(洪範圖)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주축이 되어 약 2,500여 명의 부대가 엿새 동안 화룡현의 청산리 계곡에서 일본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일본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긴 자랑스런 전투입니다.

청산리 백운평 계곡은 동서로 25km나 이어져 있는데 인마(人馬)도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험한 협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험한 곳에서 김좌진 장군 등이 지휘한 독립군은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매복 작전을 펼쳐 일본 정규군 50,000명을 상대로 1,200명 사살, 3,300명을 부상시킴으로써 기세등등하던 일본군을 패퇴시켰습니다.

반면 독립군은 130명 전사, 90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독립군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일본은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과 조선 출신의 민간인을 색출하여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이 때 희생된 한인들의 숫자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만 나라잃고 이국(異國) 땅을 떠돌던 이들은 죽음을 당하고서도 시신조차 수습할 사람이 없어서 들짐승의 먹이로 전락하는 처지였으니 그 참담함을 필자의 필설(筆舌)로는 감당키가 쉽지 않습니다.

이를 "간도참변"이라고 역사는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史實:역사에 실재했던 일)을 제대로 기록해야 함에도 자신의 관점으로 미화하고 왜곡해서 이긴 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사례가 부지기수인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국민(정확하게는 유대인)들은 2,000여 년 동안 나라없는 굴욕을 겪으면서 세계 곳곳을 전전하다가 1948년 도에 중동의 황량한 사막에다 겨우 터전을 정하고 나라를 세웁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80%가 유대인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인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의 강국들에 둘러쌓인 이스라엘이 과연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1948년부터 1973년에 걸쳐서 발발한 네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쟁쟁한 아랍연합국 군대를 초전에 박살내어 버렸습니다.

제 1차 중동전쟁만 10개월을 끌었을 뿐, 그 후로는 제 2차 10일, 제 3차 6일, 제 4차 21일을 끈 것이 전부였지만 지난 해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제 5차 중동전쟁은 벌써 13개월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마스나 헤즈볼라 지도부가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하고 있어도 이란이 이스라엘을 슬쩍 건드려 보았을 뿐, 다른 나라들은 감히 나서려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랍국들이 눈엣가시같은 이스라엘을 제거하고 싶지만 이제는 누구도 감히 나서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후환이 두려운 까닭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스라엘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가 부강해 지려면 나라를 구하고 지키려다 나라 안에서나 이국 땅의 전장(戰場)에서 스러져간 이름없는 우리의 영웅들을 기억하고 또 그 유족과 후손들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애국심도 고취시키고, 국가관도 투철해지는 것이며, 비록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그런 나라는 강대국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정학적으로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 위치함으로써 자주적인 외교나 국방이 쉽지않은 처지에서 외세의 개입으로 결코 넓지않은 국토마저 허리가 잘려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가 우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민족끼리도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가는 나라...

핵으로 동족을 몰살시키겠다고 공갈을 칠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어르며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본때를 보여줘야 했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굽실거리기만 했으니 이런 현실은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이 부당한 짓을 할 때마다 100배 이상의 본때를 보여줘버리니까 주변의 나라들이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아랍연맹에 속하는 22개국에 둘러쌓여 있는 이스라엘이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정작 그들은 400여 기(器) 가까운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주변 아랍국들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철저히 봉쇄해 버림으로써 비대칭 무기에서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 선각자들께서 삭풍(朔風)이 휘몰아치는 이국 땅에서 굶주림과 온갖 설움들을 견뎌내며 때로는 목숨까지도 초개(草芥)처럼 버리면서 나라를 지켰기에 우리는 살만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금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서는 잘 아실 터입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1년 후... 아니 한 달 후도 멀쩡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왜 우리나라는 이스라엘 같은 강하고 독한 나라가 될 수 없었을까요?

2,000년이 아닌 겨우 35년 동안만 나라를 뺏겨 보았기 때문일까요?

정신 차려야 합니다.

내일이 청산리전투가 있은지 124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선각자들의 수고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라를 더 강하게 만들어 후손들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공주대학교 행정학박사 연구교수
한서대학교 연구교수 김창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