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다리밟기'라는 민속놀이 유래와 노국공주

2024-08-19     뉴스비전e

몽골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라 말한다.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이고 아내의 권력이 남편보다 더 세다. 몽골 여인네들은 거의 모두 직장에서 일하지만 남편들은 놀고있는 남자들이 꽤 있다.

그러니 수틀리면 마누라가 쉽게 이혼해 버린다. 물론 애들은 모두 엄마가 차지하고 엄마가 재혼 하더라도 새 아빠는 엄마 뿐 아니라 데려온 아이들까지 친아빠 이상으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엄마가 재혼을 허락한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여인이 애가 몇 이건 처녀이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몽골의 오랜 전통과 관습이란다.

하기야 징기스칸 엄마도 적장의 아내를 태무진의 아빠가 뺏어 와서 태무진을 낳았고, 징기스칸도 마누라가 적장에 잡혀가서 애까지 놓았는데 징기스칸은 그를 죽이고 마누라를 찾아왔기에 함께 딸려온 가혹한 운명의 적장의 아들 쥬치를 잘 키워서 후일 유라시아 칸국의 왕으로 봉했다.

사실 쥬치의 입장에서 보면 징기스칸은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이긴 해도 친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기도 한데 그의 손에서 왕자로서 키워져서 후일 한 제국의 왕이 된 것이다.

고려 때 몽골이 중국을 정벌하고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세운 원나라 수도 북경의 왕궁에는 항상 고려의 왕자를 유학시키라는 명분으로 볼모로 잡아놓고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왕자가 매우 귀티나는 차도남 스타일의 다소 나약해 보이는 분이 있었는데 이를 자주 눈여겨 보던 예쁜 몽골 왕녀, 보타실리라는 이름의 이 공주는 얼굴과 몸매는 이쁘나 몽골인의 후예답게 말을 잘 타고 칼을 잘 써서 무예가 축출했다고 한다. 

결국 보타실리 공주는 볼모로 유학 온 고려왕자와 혼인을 하게 되는데 마침 고려의 부왕이 돌아가셔서, 이 젊은 왕과 왕비는 급히 고려로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귀국을 하게 된다. 

이 왕이 바로 공민왕이고 보타실리 공주를 우리는 노국공주라 말한다.

공민왕이 개경에 부임하고는, 왕의 부임을 반대하는 정적들에 의해 왕이 납치 되었을 때에도 노국공주는 군사들을 이끌고 말을 타고 현장에 달려가 칼을 휘두르며 왕을 구출하였고, 왕비가 된 후에도 해마다 원나라에 바쳐야 하는 공물 중 처녀300명이란 항목을 보고는 할아버지가 계신 원나라에 상소를 올려, 자신은 고려의 국모로서, 다른 금 은 보화나 곡식은 바치겠으나 내 백성은 못 바치겠다고 하여 원나라로부터 그 허락을 받아냈으니 백성들의 노국공주에 대한 지지와 찬사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홍건적의 난으로 개경이 침공 당했을 때 왕과 왕비는 경상도 쪽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 안동지역 낙동강 가에 다달았을 때 수많은 처녀와 아낙네들이 몰려와서 왕비의 발에 물을 묻힐 수 없다며 자신들이 강 속에 들어가 일렬로 허리를 굽혀 왕비가 자신들의 등을 밟고 강을 건너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에도 그 지역에는 '놋다리밟기'라는 민속놀이의 하나로 전수되고 있다. 

그 뒤 노국공주가 애기를 낳다가 죽자 공민왕은 모든 삶의 의욕을 잃고 공주의 초상화만 그리고 정치는 중 신돈에게 맡기면서 고려의 패망이 시작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몽골여인들은 늘씬하고 아름답지만 용감하고 강한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다.

과거 한국의 귀엽고 착하고 순한 신데렐라 공주형을 이상형으로 추구하다 슬프고 가엾고 애타게 끝나는 우리네 여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여인네가 당하는 피해자 측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남성을 좌지우지 하는 타입들이 많다.

신 승 철
단국치대 교수
대한구강보건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