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뭣이 중헌디?...결국 '신(종교)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영화 "곡성(哭聲)"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이다.
어린 소녀가 이불 속에서 방황하듯 내뱉는 대사 한마디이다.
유명한 철학자,정치가가 한 말이 아니기에 어쩌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뭣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고대로 부터 지금까지 풀지 못하는 미완의 숙제 이자 정답인지도 모른다. 본질적인 문제와 더불어 무엇이 현재 나에게 중요 한지의 문제는 아주 현실적 문제이다.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일을 처리하는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바둑에서 바둑 돌을 어디에 먼저 놓는 지가 승패를 좌우한다. 일의 순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결정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데 누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반추 해 보면 느끼는 점, 후회스러운 점이 너무도 많다.
나는 지금까지 엉터리로 살았다. 막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부끄럽다. 상식도,교양도 부족하고 잘 산다는게 뭔지도 모르게 살아왔다. 그래서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 왔던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생겨났나?
나는 먹기 위해 살고 있나?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생명,자유, 행복의 추구 아니면 벼슬,권력,재물 만을 쫓았는지 되묻고 싶다.
이 세상에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수많은 미술, 음악 작품과 인문ㆍ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저작 중에서 걸작이나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것들과 각 분야의 대가들이 남긴 업적과 유산이 아마도 인생에서 "뭣이 중한디?"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받고도 태연하고 오히려 자신을 죽게 해준 신에게 감사 했던 이유는 무었일까.
플라톤이 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모든 학문의 아버지로 칭송 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르네상스가 종교개혁으로,산업혁명으로 이어져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탄생 되어 지금까지도 서로 양 진영으로 나뉘어 져서 서로 목숨 걸고 싸우고 죽이고 하는 걸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돈과 권력을 쥐었다 해도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세계라는 사실이다.
현생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서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 정설처럼 논의 되고 있다. 빠르면 250년 지나면 다 사라진다고 하는데 말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멸망, 생명공학적 신인류 등장 설도 나오고 있다.
사람이 사람인 것으로 구분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오래전부터 아주 심각하게 선각자들은 고민해 왔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해답은 없다. 어쩌면 신의 영역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 각자가 자존감을 갖고 자기 생각대로 열심히 살고 내일 죽을 때는 소크라테스 처럼 육신의 고통이 끝나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면 되고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종교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을까.
'뭣이 중헌디?' 라는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야 가자! 그 답(答)을 찾아서...그런데 세상을 사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정설도 있으니 말이다.
임장근 (전)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원장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