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의 국내여행] 화순 한바퀴
회순군 능주면에 있는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와 유배온 지 한달만에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돌아가신 곳에서 헌다례식(獻茶禮式)을 가졌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화순군 한천면 학포리에 있는 '죽수서원(竹樹書院)'으로, 조광조 선생과 양팽손(梁彭孫) 선생을 봉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죽수서원에서 배향하고 학포당으로 갔다.
학포당(學圃堂)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의 서재였으나, 현재의 건물은 1920년에 후손들이 지은 것이다.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학포 양팽손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의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과 귀감이 되고 있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임금이 된다는 뜻)’이라 새긴 모함 속에 기묘사화로 인해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향년 37세에 역적으로 몰려 세상을 떠난 비운의 사나이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한 분이 바로 양팽손 선생이다.
역적의 시신을 수습할 경우 3족이 멸족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용기있는 행동을 한 것이죠. 참으로 기개가 대~단히 높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령 500년된 은행나무가 있는 이곳 학포당에서 '이진 박사'의 조광조 선생과 양팽손 선생의 역사적 얘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이양읍내에 있는 '자연농원식당'에서 돼지 주물럭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쌍봉사로 갔다.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쌍봉사(雙峯寺)'는 송광사 말사로 창건주 철감선사의 도호가 쌍봉이었으므로 사찰명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전했다.
쌍봉사는 1984년 4월 초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타버렸는데, 다행히 이전에 남겨둔 단면도가 있었기에 무사히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 현재는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 선생이 은사 조광조(趙光祖)가 남곤(南袞) 등의 훈구파에게 몰려 전남 화순군 능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조성한 원림(園林)이죠.
소쇄원이란 양산보 선생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쇄원' 또는 '소쇄원림'이라 불린다.
김종원 여행작가 kimjw@n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