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칼럼] '제2 베트남', 아프간 전쟁이 주는 시사점
2001년 9·11 테러 뒤 미군이 ‘항구적 자유’라는 작전명으로 개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군 철수와 친 서방 정부의 항복, 탈레반 세력의 부활과 재집권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미국이 지난 20년간 약 100조 원을 들여 지원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탈레반의 진격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려저 갔다. ‘무혈입성’으로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접수했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리는 ‘혼비백산’ 하면서 줄행랑을 쳤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영원한 지원 세력으로 남을 것 같은 미국 대사관과 관련 인사들은 추가 파견된 특수지원병력 엄호하에 ‘안면 몰수’하고 안전 철수에만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은 정말 꼴사납게 보인다.
오로지 해외로의 탈출구가 카불 국제공항이다 보니 미군의 중점 엄호 방어구역이 되어 버렸다. 서로 자기만 살겠다고 공항이 북새통과 아비규환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는 광경은 정말 가관이다. 마치 ‘제2의 베트남 사태’로 여겨지는 ‘사이공 최후의 날‘을 연상케 한다. 미국을 위시한 영국, 독일 등 서방 세계의 무책임한 처신이 국제사회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다.
더욱이 미군의 완전 철수 이전에 탈레반이 대통령궁을 접수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그야말로 ‘당나라 군대’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당나라 군대는 일명 `오합지졸의 군대`를 일컫는 말이다. 전쟁에서 강한 공격도 못 해보고 패배만 보는 군대, 군기가 약한 병사나 장수들을 비유적으로 통칭하는 비속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우면 승리’할 수 있는 강군(强軍)의 요체는 '3기'로 집약된다. 이른바 무기, 사기, 군기다.
무기 측면에서 탈레반은 공군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돌격 소총, 로켓추진 수류탄(RPG), 오토바이가 고작이었고 상당수 탈레반 전투 요원은 슬리퍼를 신고 전투에 임했다. 병력에 있어서도 아프간 정부군 전투요원은 30만인 데 반해 탈레반 조직원 수는 대략 6~7만 정도였다.
10만에 달하는 미군과 서방 연합군이 지켜 줄 때는 사기가 겉으로 충천했다. 하지만 철수 계획이 공표되고 나서는 강한 정신력에 바탕을 둔 전투 정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주요 시설 방어병력도 탈레반에 투항하거나 국경을 넘어 도주하는 상황이 확산하고 패전의식은 급격히 부상되었다.
부패한 군경 간부들이 조작한 장부에만 있는 ‘유령 군인’ 존재는 다반사였다. ‘염불에는 정신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모럴해저드가 도처에 만연되었다. 자연스럽게 군기는 엉망이 되고 일선 전투 병력은 사기를 잃을 수밖에 없는 형국으로 변해 버렸다.
농촌과 산악지대에서 조직을 정비한 탈레반 조직은 점차 북부 상업 도시 및 주요 거점 도시를 점령으로 세를 점차 결집·확산시켰다. 자연스럽게 미군이 정부군에 제공한 엄청난 양의 현대식 무기가 탈레반으로 넘어가면서 정규적인 전투조직으로 변했다. ‘자력으로 국가를 되찾겠다.’는 이슬람식 정신무장으로 무장한 탈레반의 유격전이 마침내 ‘가용전력 우위’를 외치는 미군이 주도하는 정규전을 패퇴시킨 격이다.
단순한 물량적인 소모전으로는 마치 점차 벌어지는 ’악어의 입‘을 충당시킬 수만은 없었다.
결국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미국의 끝없는 주둔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철군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마치 베트남 전쟁의 실패 사례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20년간 아프간 정부군을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강한 군대로 키우겠다던 미국의 노력이 남긴 ‘21세기 실패작’이었다.
과거 월남 패망 전 구엔 반 티우 대통령은 1975년 4월 21일 미군 철수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사임했다. 그는 사임 연설에서 “미국은 미국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우리에게 미룬 채 도망쳤다”고 말했다.
온실 속의 화초보다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줄 아는 잡초가 생명력이 질긴 법이다. 외세를 빌려 영원히 우리를 지킬 수 없다는 진리를 ‘20세기 베트남 사태’와 ‘21세기 아프간 사태’를 통해 실로 깨달아야 한다.
한미 군사동맹이 필수(必須)이지만, 분명 상수(常數)는 아니다. 자주 국방, 강군 육성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환수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상기 한중안보평화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