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볕더위를 피해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 불볕더위를 피해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서울서 운동 삼아 나와" "아예 주무시고 가세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천공항이 노인들에게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다만 공항 내에서는 이같은 노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여름 더위가 극에 달할 땐 바깥기온이 35도를 웃도데 반해 인천공항의 실내온도는 24도에서 26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노인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휴식처로 손꼽힌다. 시원한 바람찾아 공항까지 온, 이른바 '공캉스'(공항+바캉스)를 즐기려는 노인들이다.

한 낮기온이 35도를 넘나들었던 지난 14일 낮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T2) 제2교통센터 지하 1층과 1층에는 약 100여명의 노인들이 나무 벤치에 눕거나, 직접 챙겨온 돗자리에서 과일 등을 나눠 먹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이곳 1층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도 노인들끼리 옹기종기 않아 TV로 뉴스를 보느라 인산인해를 이뤘다.

[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
[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사진 = 뉴시스 ]

특히 제2여객터미널과 정부청사를 연결하는 교통센터 1층 밀레니엄 홀에는 각종 나무와 분수 등 조경이 잘 꾸며져 있어 노인들에게는 휴식처로서 제격이다. 또 제2여객터미널과 연결된 1층 버스터미널과 달리 이곳은 인천공항을 자주 찾는 이용객도 잘 알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공항을 찾는 노인들 대부분은 무임승차가 가능한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들은 서울과 인천 등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까지 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18일 공항철도에 따르면 지난 8월1일부터 11일까지 인천공항을 찾은 65세 이상 이용객은 3만2118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2900여명의 노인들이 인천공항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 더위를 피해 인천공항을 찾은 노인은 5만8710명으로 올해 45%가 줄었다.

이는 지난해 일부 노인들 사이에서 무질서한 모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지 말자는 취지에서 대한민국의 관문공항인 인천공항만큼은 가지 말자는 자성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 공항을 찾은 노인들이 벤치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지난해 불볕더위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인들이 이곳으로 몰리면서 터미널 곳곳에서 돗자리를 깔거나 상업시설의 테이블들을 점유하는 등의 무질서가 난무했다. 급기야 빈 테이블을 놓고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이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는 취지에서 올해부터는 공항을 찾는 노인들 대부분이 공항 이용객과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주로 찾는 공항 내 명소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제1여객터미널의 비선루와 제2터미널 교통센터, 홍보관 등이다. 이들은 모두 일반승객과의 접촉이 적은 곳이다.

교통센터에서 만난 박모(72) 할머니는 "올 여름 매일같이 서울 마장동에서 이곳까지 운동 삼아 온다"며 "이곳에 오면 같은 나이의 사람과 만나 얘기도 나누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동네 친구의 소개로 왔다는 김모(78) 할머니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여기가 지상낙원"이라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공항에서는 노인들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다.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한 환경미화원은 "올여름 공항을 찾는 어르신들이 집에서 싸온 음식들을 공항 여기저기서 드시기 때문에 예년에 비해 음식물 쓰레기량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한 보안요원은 "바깥 보다 공항이 더 시원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쉬시다가 아예 밤새 주무시고 가는 노인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공항에 방문하는 노인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수는 없지만, 홍보관의 경우 하루 평균 1000여명의 노인들이 방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후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붐빈다"고 설명했다.

공항철도 측도 노인들의 이용이 늘어나면서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다. 공항철도 관계자는 "바깥기온 33도가 넘으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열차 기관실에 지도팀장이 같이 타 객실온도 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비전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