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나는 이글에서 나와 마음을 같이 해준 학생들의 노력과 희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당연히 고전시학, 혹은 한시를 통한 마음치유에 대해 이론적인 강의를 펼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아직은 그런 수준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겨우 그간 한시를 강의하면서 가졌던 난제를 해결하고자 ‘모험’을 감행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걸음을 준비하고자 할 뿐입니다.

우리의 주안(主眼)은 과연 한시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일까? 아니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미 시로 마음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실천과 조언에 인문적 자극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부하는 분야에서 그 자극을 어떻게 유용한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우리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글은 바로 그 자각의 한 여적(餘滴)일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시-테라피에서 옛사람의 한시가 활용된 예는 없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빈공간이 있음을 일깨워주었고, 무모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청춘문답》으로 공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시를 통해 대학생들의 상처를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과연 한시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청춘문답》은 4년여에 걸쳐 40명 학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대학의 강의가 학기 단위로 나뉘고 취업에 내몰리고 있는 지금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한시라는 다소 어렵고 당장 돈도 안 되는 분야에 오랫동안 많은 노력이 모아진 셈입니다. 이 책을 본 어떤 사람은 새로운 형식의 한시선집으로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학생들과 면담하기 위한 참조서로 생각했으며, 어떤 교사는 대학내 교수와 학생의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더러 학생들의 레포트를 모아내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만났습니다. 다소 정체가 모호한 책이지만, 우리는 그 경계의 모호함에서 마음치유의 희망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성공여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실제 테라피에 적용해본 적도 없습니다.

아, 도서관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네요. 그때 정치외교학과 복학생에게서 ‘한시도 힐링이 되는군요’라는 메일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책의 집필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아픔이 같은 아픔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서, 그것도 한시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음에 놀라워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해주고 위로받았습니다. 고민을 내놓은 이도 학생이었고, 시를 통해 어루만져준 이도 학생이었습 니다. 위로는 친구끼리 스스로 찾아갈 때 더욱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한 전략이었지요. 학생들은 한편으로는 조금 난처해하기도 하고 쑥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 익숙지 않았던 탓에, 상처를 상기(想起)하는 것이 어려웠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걸 듣는 것도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학생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이들은 자신의 스토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지금 말하는 미래들, 꿈들도 오롯이 자신들의 것은 아니지요. 타고날 때 지녔던 비상(飛翔)에의 욕망조차 잃어버린 도도새들은 그저 자본이 안겨준 위기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른바 누군가에 의해 안내된 안정된 장소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던 이들이 드디어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자리에 갈무리했던 상처를 끄집어내고, 그 상처를 직시하며 위로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 김승룡 교수는...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식인’, ‘인간의 마음’, ‘로컬리티’ 등을 염두에 두고 《묵자》, 《사기》를 비롯해 한시와 시화를 가르치며 고전지식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동아시아 한문고전의 미래가치를 환기하며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것이나 한문교육이 인성을 증진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저서로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공저, 2005), 《새 민족문 학사 강좌》(공저, 2009) 등을 비롯해 《옛글에서 다시 찾은 사람의 향기》(2012), 《고려후기 한문학과 지식인》(2013), 《한국학의 학술사적 전망》(공저, 2014), 《청 춘문답》(공저, 2014) 등이 있고, 역서로 《송도인물지》(2000), 《악기집석》(2003) 등을 비롯해 최근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공역, 2015), 《능운집》(공역, 2016), 《 문화수려집》(공역, 2017) 등이 있다. 《악기집석》으로 제5회 가담학술상(2003)을 수상하고, 베이징대 초빙교수를 두 차례(1997, 2008)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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