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1894년에 쓰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동무(東武) 이제 마 선생이 갖고 있던 평생의 고민 '어떻게 하면 성숙한 인성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모든 한의사가 수업 중에 읽고 외웠으며, 의료인이 되기 위한 시험에 출제되는 책,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고, 한국사 ‘실학’ 부분에서 배웠으며, 최수종 주연의 30부작 TV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로 만들어져 익숙한, 한국 의학사의 고전이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 고전의 정의를, ‘들어는 보았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책’,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하면서 일반인들은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책’, 그리고 ‘나름대로의 해석들이 공존하는 뭔가 모르게 난해한 책’이라고 했다.

실제 동의수세보원의 첫 구절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 고민스러운 것이 현실이기에, 선식이나 건강기능식을 체질에 맞추어 처방한다는 저간의 주장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의수세보원은, ‘평소에 가려먹기만 하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먹방의 MC가 아니고, 건강한 신체와 성숙한 인격을 지닌 보통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한 의학서다. 성숙한 인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동의수세보원의 첫 번째 챕터로, 타고난 본성을 잘 발휘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성명론(性命論)에서는, 내가 타고난 것을 스스로 되돌아보아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存其心 養其性)이 중요하고, 그 방법으로는 착한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은 싫어하는 것, 호선오악(好善惡惡) 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두 번째 챕터인 사단론(四端論)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4가지 핵심적인 본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격한 감정의 과도한 표현은 칼로 사람의 내장을 잘라내는 것과 같아서 10년이 걸려도 회복하기 어렵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생사와 수명의 길이를 결정할 만큼 큰 일이다.(如此而動者無異於 以刀割臟 一次大動 十年難復. 此死生壽夭之機關也)”라고 이야기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스스로 살펴서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음식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잡아도 한참을 어긋난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고담준론(高談峻論)의 어려운 이야기만 늘어놓은 형이상학적 철학 서적으로만 치부하려는 것이다.

이제마와 동의수세보원은 ‘실학’이다. 물론, 어떠한 학문도 철학적 토대가 없을 수도 무시할 수 도 없지만, 이제마의 철학은 격치고(格致藁, 1880~1893)를 보면 될 일이며, 동의수세보원은 의학서적으로 심신의 건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너무 고리타분하게 접근한다면 현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실학’의 범주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조선 말기 실학(實學)은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학문적 조류로, 재야의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18세기를 전후해 연구되었다. 허망하고 현학적인 고담준론에서 벗어나 생활 자체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새로운 학문의 추구라고 할 것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학문을 추구했기에, 중국의 실사구시(實事求是)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학적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청나라의 의림개착(醫林改錯), 1830과 전체신론(全體新論), 1851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둘은 실제 해부학적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당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의학서로, 심장과 뇌를 비롯한 인체 장부 개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대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보았던 의학서적으로 조선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볼 때, 이제마의 장부론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채 한 교수는...

부산대 한의학과 교수. 경희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문학>신인문학상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하버드 의대,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토야마대와 워싱턴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한의사로는 드문 해외유학파로 ‘한의학 국제화’, ‘한의학 교육학’, ‘생리심리학’이라는 다양한 학문적 관심위에서 ‘사상의학’을 몸에 대한 치료뿐아니라 마음을 키우는 차세대 한의과학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문文·사史·철哲의 탄탄한 토대가 없다면 과학은 영혼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왕성한 논문 발표와 함께 해외 저명 학술지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을 담은 저서로 《실습으로 익히는 의학논문 작성법》(공저, 2017), 《동의생리학》(공저, 2016), 《한의학 한자 1000》(2014), 《침구시술 안전 가이드》(공저,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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