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멘트산업의 살아있는 역사] 남기동 회고록(61) 걸어 다니는 결재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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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멘트산업의 살아있는 역사] 남기동 회고록(61) 걸어 다니는 결재도장
  • 남기동
  • 승인 2019.06.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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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비전e] 경영은 인간이 하는 것이며 인간이 모여 인간의 행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인간의 능력이나 경영력은 신과 같이 전지전능하지 못하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고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각자가 자기 힘을 다해 협력하고 합심할 때 기업은 성장하고 업적은 신장될 것이다.

경영이란 무리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다. 껑충껑충 뛰는 토끼를 이겨낸 거북이같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영의 조직이나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며 아무리 완비된 조직이나 기법을 도입하더라도 이것들을 올바르게 운용하지 못하면 성과도 거두기 어렵고 기업도 후퇴하게 마련이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으로 누이 기진의 아들이다

경영에서 필요한 힘은 인력, 자금력, 기술력, 판매력 등이 있겠지만 근본이 되는 것은 올바른 경영이념이다. 이것이 뿌리를 내려야 이 네 가지 힘이 합쳐져 진실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올바른 이념이 있어야 기업의 건전한 발전이 기대되며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정세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다. 직원 개개인 모두가 경영자라는 자각과 자부심을 가지고 동고동락, 공존공영의 신념으로 합심할 때 비로소 기업의 발전이 기약된다.

기업은 사회 발전과 더불어 신장되어야 하며 형태를 막론하고 사업 내용 모두가 사회와 국가에 연결되는 공적 임무를 띤 공기(公器)다. 따라서 각자는 자기 회사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플러스가 되는지 언제나 자문자답하는 반성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길러내는 데 유의할 점은 단순히 업무추진력이 있고 기술이 능숙한 사람보다는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훌륭한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이나 국가간 교류가 날로 확대되고 복잡해지고 있는 시대에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인재 육성이 더욱 절실하다.

경영자의 마음가짐에서 근본적인 것은 순박하고 정직한 마음일 것이다. 항상 세상과 대중의 소리와 부하들의 말에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양시멘트 광양레미콘공장 현판식

나는 CEO로 일할 때도 언제나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최고경영자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임직원들은 늘 사장 눈치만 보게 되고 언제 결재를 받는 것이 좋을까 망설이다 시간만 낭비하기 일쑤다.

경영자가 결재라인의 병목(bottleneck)이 되어버려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업무가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컨대, 나는 경영자 시절 출타할 때마다 결재도장을 들고 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사장실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거나 내가 자리에 없다고 결재 받을 임원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나 한 사람이 몇 십 분만 돌아다니면 회사 전체의 업무시간을 수십 일 이상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박한 마음가짐은 사물의 실상을 그대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관용과 자비로운 마음도 우러나게 되어 경영도 원만해진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람은 자기 업무에 책임을 가지며 환경이나 남의 탓으로 미루지 않고 자기 책임을 명확히 하는 맡은 업무의 전문가다. 즉, 필요한 존재,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어야 한다.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과제를 해결하고 자기 능력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인격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전 사원이 참여의식을 고취해 협동하고 개척하는 정신으로 단결하고 그 업무를 수행하면 매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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