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상공부에 근무하던 1958년, 큰형이 동소문동 6가로 이사했다. 대지 100평이 넘는 한옥이었다. 명륜동 집이 30평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큰 집이다. 명륜동 집을 판 돈과의 차액을 거의 내가 보조해주었다.

큰형도 명륜동 집이 너무 좁아 좀 더 큰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큰형은 오직 의학공부에만 열중한 나머지 돈을 모을 줄 몰랐다. 임상보다는 연구와 후학 양성에 뜻이 컸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큰형에게 “돈은 내가 벌 테니 너는 개업하지 말고 연구에 매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 분단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다.

큰 집으로 이사 가려는 큰형의 소망은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만약 아버지가 1・4후퇴 때 내려오셨다면 틀림없이 큰형에게 집을 사주셨을 것이다. 큰형은 집이 좁은 것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큰형에 비하면 수입이 많은 편이었다. 알뜰한 아내가 저축을 많이 한 덕분에 큰형이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데 보탬이 될 수 있었다. 형님이 “기동이 네가 아버지를 대신하는구나!” 하며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아버지의 못 다한 사랑을 나라도 대신 실현해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형은 그 집에서 5남매를 모두 출가시켰다.

큰형은 생리학교실에서 연구 외길을 걸었다. 1941년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 65세로 정년퇴직할 때까지의 생활이 곧 생리학이었다.

1963년 우리 3남매에게 슬픈 일이 있었다. 그 해 11월 24일 매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여동생 기진이와 5남매(재천, 재민, 재현, 재희, 재란)을 남기고 갔는데, 당시 나는 유럽에 있었다.

장례는 형님이 치렀다. 혜화동 천주교당에서 영결미사를 올렸다. 매부는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였는데도 자기 몸을 돌보지 못했다. 큰형의 얘기로는 폐결핵인 것을 폐기종이라 자가진단하고 다른 의사와 상의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결핵치료법이 발전해 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치료를 하지 않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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