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왼쪽은 중국 북송의 화가 이적(李迪)의 공필화조화(工筆花鳥畵)입니다. 주로 궁정화가들이나 직업화가들이 사용하는 화법으로 대상의 외형적 사실에 치중하며 기교적이고 장식적이며 화려하게 그려졌네요. 치밀하게 공들여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기 때문에 실물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寫實畵(사실화)에 속합니다.

오른쪽은 남송말기의 화가 목계(牧溪)의 수묵화조화(水墨花鳥畵)로 공필화조화와 대비를 이루면서 문인, 학자들에 의해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화법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하고 간략하게 생략적인 필법으로 그립니다.

화가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에 寫意畵(사의화), 뜻과 정신을 그리는 그림라고 부릅니다. 주로 수묵이 많지요.

두 그림의 공통점은 나무 위에 홀로 앉은 새를 그려 놓은 것인데, 무언가 다른 느낌과 분위기가 나네요. 무엇 때문일까요. 발견했나요? 

왼쪽 그림은 사진을 찍은 듯 정말 새처럼 잘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표정에서 슬픈지 기쁜지 외로운지 감정을 알 수가 없어요.

오른쪽 그림은 어떤가요? 머리를 날개죽지에 푹 파묻고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졸고 있는 듯 휴식  중인 듯 온갖 상상을 부르네요.

왜 이렇게 다를까요. 왼쪽은 새나 나뭇가지의 휘어짐, 댓잎 위의 눈, 새의 자태 등을 극히 치밀하고 세밀한 붓질로 마치 사진 찍은 듯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채색도 가미되었습니다. 이런 그림은 옛날 궁궐의 장식용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림에 화가의 기분과 감정이 담겨있지 않아요.

오른쪽 그림은 물과 먹으로 그렸지만, 화가가 자신의 기분대로 자유롭게 새나 나무의 모습을 변형시켜 그렸습니다. 사실화는 실제 모습 그대로 베끼듯이 그린 그림이고, 사의화는 새의 실제 모습보다는 화가의 감정이 새에 이입되어 그려진 그림이랍니다. 화가가 슬프면 새도 슬프게, 화가가 기쁘면 새도 기쁘게 그려질 수 있지요.

위의 두 그림 역시 전달되는 느낌이 다르지요. 위의 그림은 마치 실제 새를 사진 찍은 듯 새의 자태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아래 그림은 수묵으로 단순하고 간략하게 그려져 섬세하지는 않지만 왠지 새의 눈동자에서 익살스런 장난끼가 보이지요. 화가도 장난끼가 많은가 봅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황족 출신으로 이민족 인청에 나라를 잃은 유민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이 그렸습니다.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듯 졸고 있는 새를 그린 듯합니다.

저러다가 옆으로 넘어질까 불안하면서도 무척 평화로워 보입니다. 지그시 감은 눈이 더 없이 평안해 보여서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있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팔대산인은 망국의 한과 울분의 마음을 달래려고 해학적인 화조화를 그렸답니다.

누군가 개구리를 잡아서 짓궂게 다리를 묶어 놓은 그림이군요. 그런데 개구리는 다리가 묶인 채로 도망가려 하나 오른쪽 다리가 늘어지면서 말을 잘 안듣나 봅니다. 그럼에도 개구리는 눈만 멀뚱멀뚱, 전혀 슬픈 눈빛이 아니군요. 오히려 불안하게 바라보는 우리에게 웃음을 줍니다.

 

 

◆ 이나나 작가는...

아트갤러리 빛 관장. 계명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와 계명대에서 동·서양 미술사를 강의하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 ‘미술의 인문적 소통’, ‘예술로 재생되는 ‘구도심’을 키워드로 예술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또한 동양미술에서 <문인화의 연원과 근대 영남문인화의 형성에 관한 연구>로 대구와 김해 문인화를 비롯한 한국 영남지역의 근대 문인화의 형성과 발전에 주력하면서, 전통문인화의 현대적 계승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문인화의 연원과 영남문인화》(2013), 《대구미술 100년 사》(공저 2016) 등이 있고, 논문은 《서병오와 근대 연남문인화 형성》(2011), 《김 해문인화의 미적 특질 연구》(2015) 외 다수가 있으며, 대구·경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위한 <우리 지역 스타작가 알아보기> 평론을 3년째 집필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건축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협회 평론분과 이사, 경북미술협회 평론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미술비평 빛과 삶 연구소’ 소장으로 포항의 구도심 지역 예술문화거리 정착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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