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동궁초등학교는 다행복학교로 선정되어 4-6학년을 대상으로 LiD를 진행 중이다. 아직 발표회 경험은 없지만 스케치북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축적하고 있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 공부를 싫어하거나 힘들어하는 학생이 많았는데 LiD를 계기로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어요. 주제가 다 다르니 서로 비교가 되지 않아 자신감이 늘어났어요. 친구들이 서로의 주제를 기억하고 있어서 대화를 할 때 그 내용이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학문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에요. 수업시간에 ‘나무’라는 주제만 나와도 이야기 거리가 됩니 다.” _동궁초등학교 교사

그간 교육은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면서 학생들에게 듣기를 강요했다. 듣는 주체로서 학습자는 언제나 수동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기에 스스로를 배움의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대화’의 시작은 좋은 징조다. 배움의 근본은 진정한 대화에 있다. 특정한 주제를 매개로한 지적인 대화는 사적인 관계에서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동궁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주체가 되어 배움으로서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시작하기 전 어른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에 의문을 품었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재미에 한껏 노출된 학생들이 과연 천천히 공부하는 이 프로그램에 빠져들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세 학교 모두에서 의외의 결과를 만났다.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고 순수한 배움의 욕망이 있었다.

세 학교의 공통점은 프로그램 도입에 있어 관의 강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배움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고민의 길에서 우연히 LiD를 만났다. LiD는 특별한 기술도 도구도 없고, 명확한 결과를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천천히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이다. 이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교육의 전제이지만, 우리 교육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부분이기도 하다.

반신반의하며 프로그램을 도입한 교사와 연구자들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긍정적인 효과를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신중한 상태다. 프로그램의 결과를 강조하는 순간, 아주 잠깐일지는 몰라도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경험한 그 반짝이는 기쁨이 퇴색될까봐 그러하다. 어쩌면 애초에 배움으로부터 도피한 건 학생들이 아니라 사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쟁과 성공의 논리로 학생들의 마음속에 움트는 씨앗을 밟아 왔던 건 아닐까. 그들이 배움을 향한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기다리고 지지할 때 교육은 곧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일 큰 고민은 힘을 빼는 거였어요. 동료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아무리 천천히 가자고 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제 스스로 힘을 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엉망인 것은 엉망인 채로. 교사 간, 학생 간 경쟁하려는 마음을 빼는 게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요.”

 

 

◆ 김회용 교수는...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 피츠버그대(Univ. of Pittsburgh)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경상대 교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린이 철학’, ‘사고력 교육’, ‘상상력교육’ 등 아동의 철학적 사유 능력 증진에 관심을 두고, 철학 이론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상력을 활용하는 학습이론인 ‘깊은 학습(Learnin in Depth)’ 프로그램을 초등학교에 적용해 교육학계와 학교 현장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저서로 《교육과 교육학》(공저, 2015), 《다문화 교육의 현황과 과제》(공저, 2008), 《교육철학 및 교육사》(공저, 2014), 《교육학개론》(공저, 2014), 《좋은 교육》(공저, 2007), 《질적 연구: 우리나라의 걸작선》(공저, 2008)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상상력교육,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공역, 2014), 《깊은 학습, 지식의 바다로 빠지다》(공역, 2014), 《교육연구의 철학》(공역, 2015), 《교육과 지식의 본질》(공역, 2013), 《머리 속의 수레바퀴》 (공역, 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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