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지금까지 고대 중국과 그리스의 실천적 철학, 근대 유럽의 합리적 과학 그리고 21세기의 열린 과학을 통해 흐르는 인간 본성의 계보를 추적해 보았는데,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불변의 인간 본성은 없다는 것이 잠정적 결론이다. 시대 상황에 맞는 인간의 속성을 본성이라 가정하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해 왔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인성교육진흥에 관한 법까지 제정해 가며 확보하려는 인간의 속성도 충분한 역사적, 철학적 검토 없이 가정된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는 것일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살도록 지원하기보다는 옳다고 여겨지는 속성을 습득하도록 강요하는 인성교육이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정의를 구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성교육이 주문형 인간의 완성이 아니라 각자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라면 큰 틀에서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인성교육이 정원의 화초를 가꾸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상처입은 야생동물이 스스로 돌볼 수 있게 되어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특정한 지식이나 인간적 속성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해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식과 권력의 계보를 추적해 현대철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말년에 관심을 주체의 형성과정으로 돌려 인성교육이 참고할 만한 멋진 주장을 내놓았다.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자기창조, 이렇게 창조된 주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변화를 만들며 재창조로 나아가는 끊임없이 ‘되어가는(becoming)’ 존재의 미학(美學)이다.

이런 존재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 푸코가 고대 그리스인의 삶의 방식에서 찾아낸 자기배려(epimelei heautou)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너 자신을 알라’는 ‘너 자신을 배려하라’가 된다. 이것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타인이 아닌 자신만을 돌보라는 이기적 명령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적 도시국가에는 이기적 개인이라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도덕은 행위 규칙이나 코드의 체계가 아니라 에토스였고. 주체의 존재 양식이었으며 타자를 향한 자율적 행위 방식이다. 

자기배려는 약자로서 스스로 제공하는 자기 서비스가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추구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미학적 존재윤리다. 푸코가 고대 그리스인의 삶 속에서 찾아낸, 스스로를 배려해 자신의 존재를 미학적으로 완성해가는 삶의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 중 하나가 진실 말하기파레시아(parrhesia)다.

이 파레시아를 진실을 말하는 ‘행위’와 등치시켜서는 곤란하다. 파레시아는 행위의 규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이는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삶의 양식일 뿐 아니라 타인과 합리적이면서도 진솔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파레시아는 타인을 설득하는 수사학rhetoric이 아니라 진실한 자신을 만들어 감으로써 저절로 소통이 이루어지게 하는 삶의 실천이다. “파레시아는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설득 대신 정직을, 허위나 침묵 대신 진실을, 생명과 안전 대신 죽음과 위험을, 아첨보다는 비판을, 도덕적 무력이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도덕적 의무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2월 “미투운동”에 나선 성폭력 피해자들이야말로 파레시아라는 고대인의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파레시스테스파레시아의 실천자(parrhesistes)들이다.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겨울 동안 천만이 넘는 시민이 촛불을 들었던 진실 말하기의 집단적 실천도 그러하다. ‘미투’는 알량한 권력을 내세워 약자인 을의 행복을 짓밟은 부도덕한 갑들에 대항해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한 파레시아이며, ‘촛불’은 행복의 기반인 정의를 위해 불의를 저지른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한 파레시아였다. 이처럼 행복과 정의를 위해 진실을 말하는 현재 진행 중인 실천행위야말로 인성교육의 살아있는 교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과 정의는 인성교육과 시민교육을 묶어줄 중심 가치이기도 하다. 이것은 학교교육이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존 듀이의 교육철학과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모두를 편안케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유교적 정치이념, 그리고 자기 배려와 진실 말하기를 실천한 고대 그리스인의 실천적 지혜와도 어울리는 가치다. 

이 가치는 또한 우리 몸의 생물학적 역사와 경험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 유전학, 면역학, 뇌과학 등 생물과학의 연구성과들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몸철학과도 묘하게 공명을 일으킨다. 성교육이란 이런 가치가 몸속에 녹아들어간 체현(體現)의 결과이고, 삶속에서 앎을 실천하는, 그래서 앎과 삶과 함의 순환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 강신익 교수는...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추상적 지식보다는 일상적 삶에 봉사하는 의학을 지향한다.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변해가는 삶의 터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5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마흔이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의학관련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0년부터 일산백병원 치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의료인문학을 가르쳤고, 2004년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전임교수가 되었다. 2013년 가을부터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인문학적 의료’를 공부하고 가르친다. 특히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2007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으로 인문의학연구소를 개설해 <건강한 삶을 위한 인문학적 비전>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인문의학》 시리즈 3권을 펴냈다. 지은 책으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몸의 역사》, 《의학 오디세이》 (공저),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공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등이 있고 역서로는 《공해병과 인간생 태학》, 《사회와 치의학》,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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