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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특강★시민의 인성] 강신익 교수② 누구를 위한 인성인가?

[뉴스비전e] 인성교육진흥법의 목표는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이다.

성품은 가꾸어야 할 사람의 바탕이요 역량은 키워야 할 잠재력이다. 하지만 그 바탕과 잠재력의 목적은 국가사회의 발전으로 제한된다. 그 바탕과 잠재력을 가꾸고 키웠을 때 교육의 당사자에게 초래될 행복한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이 법에는 ‘행복’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2017년 인성교육 시행계획안에는 5번 언급되지만, ‘행복한 유치원’, ‘행복한 마음여행’ 등 애매한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을 뿐 인성이 행복에 기여한다는 언급이나 암시는 없다. 국민을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품성조차 국가발전의 수단으로 여기는 근대국가의 획일적 인간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21세기 교육에 적합한 인간관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세상은 수많은 수단과 목적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고 인성이 국가나 개인의 발전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길러진 인성과 그것 자체가 목적인 인성 중 어떤 것이 더 값진 것일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모든 서양 학문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의 목적은 ‘선善, 좋은 것의 달성’이라고 말한다.

이들 중에는 활동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것도 있지만, 또 어떤 것은 활동의 결과물이 목적인 경우도 있다. 그 자체가 목적인 것,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최고의 선’이다. 그리고 그 최고의 선을 일반적으로 ‘행복’이라 말한다. 그러나 개인에게만 완벽하게 좋은 자족적 선이나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자족이란 어떤 한 개인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족, 친구, 나아가 시민 전체의 만족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선을 우리는 정의라 부른다. 정의란 공동체의 행복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교육의 목적을 사회발전이라는 한정된 가치를 넘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포괄적 가치로 확장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인성 교육과 시민교육으로 분리된 두 길을 연결해 종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윤리학의 역사는 대체로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합리적 방법을 찾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개척한 행복의 길은 크게 세 방향으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찾아낸 선험적 도덕법칙에 따라 사는 길이다. 여기서는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와는 관계없이 그 행위를 추동한 동기가 옳은지 그른지가 중요하다. 

인간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과 자유의지에 따라 그것을 선택하거나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입법자이자 행위자다. 합리적 이성에 따라 제정된 도덕법칙이 부여한 ‘의무’가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다.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성교육은 도덕적 판단능력과 그렇게 판단된 규칙의무에 따라 행동할 양심을 길러주는 것이 된다. 문제는 판단능력과 양심 그리고 직접적인 행동을 연결할 논리적, 정서적, 실천적 고리가 약하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근거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 

둘째는, 동기의 옳고 그름보다 그 행위의 결과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를 따져서 사는 길 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공리주의의 논리다.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성교육과 같은 노선이지만, 인성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훈훈함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차가움이 느껴진다. 공리주의자가 되려면 어떤 행위가 누구에게 얼마나 이롭고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손해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만 할 터인데, 우리의 직관은 아직 그런 계산과 판단 능력을 인성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런 사적 동기 없이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그것을 종합해 올바른 도덕 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의무나 결과로 주어지는 행복의 총량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아닌 행위자 자신의 인간적 탁월성德, virtue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성의 덕이고, 다른 하나는 성품의 덕이다. 철학적 지혜나 이해력, 실천적 지혜는 지성의 덕이고, 관용이나 절제는 성품의 덕이다.” 

여기서 ‘성품’이라 번역한 말은 본래 품성, 상태, 성격 등으로도 옮길 수 있는 말에서 온 것이고 우리의 상식적 직관은 이런 덕을 인성교육의 지표로 삼는 데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통해 그런 덕을 기를 수 있다는 인성교육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지성의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해 얻어진다. […] 그러나 성품의 덕은 올바른 습관이 쌓여서 생긴다.” 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육과 습관이 분리되어 있으며 성품의 덕은 교육이 아닌 습관에 의해 길러진다고 본다.

인간의 덕을 인성교육의 기반으로 삼기 위해서는 지성과 성품, 교육과 습관 사이를 이어줄 고리가 필요하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면 이론과 실천, 앎과 삶,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 규범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최고 선’인 행복과 정의를 지향하는 인성교육이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성 교육을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선인 행복과 정의를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 자체를 인성교육으로 삼는 다면 이 간극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행복과 정의에 대한 생각과 공부와 실천을 습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과 정의를 깊이 알고 그 가치에 따라 살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경험’을 통해 인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강신익 교수는...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추상적 지식보다는 일상적 삶에 봉사하는 의학을 지향한다.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변해가는 삶의 터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5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마흔이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의학 관련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0년부터 일산백병원 치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의료인문학을 가르쳤고, 2004년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전임교수가 되었다. 2013년 가을부터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인문학적 의료’를 공부하고 가르친다. 특히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2007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으로 인문의학연구소를 개설해 <건강한 삶을 위한 인문학적 비전>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인문의학》 시리즈 3권을 펴냈다. 지은 책으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몸의 역사》, 《의학 오디세이》 (공저),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공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등이 있고 역서로는 《공해병과 인간생 태학》, 《사회와 치의학》,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해》 등이 있다.

강신익 교수  medhum@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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